요즘 정유회사들처럼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경우도 없다.

시장에서는 수입석유회사들의 공세에, 정부로부터는 군납유류 입찰담합에 따른 과징금부과와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정유업계 내부에서는 대한송유관공사 운영과 폴사인(주유소 간판)제 폐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매달 말 돌아오는 석유가격조정을 둘러싼 경쟁사 눈치보기도 시름덩어리다.

무엇보다도 정유사들을 옥죄고 있는 것은 군납유류 입찰담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1천2백11억원과 국방부 손해배상소송 금액 1천5백84억원 등 정부가 요구하는 금액이 무려 2천7백95억원.

지난 3년 동안 정유회사들이 담합해 국방부로부터 낙찰받은 계약금액 7천1백28억원의 39.2%에 달한다.

정유사들의 담합은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이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5개 정유사의 군납 관련 임원과 직원들이 모여 입찰가격과 물량을 협의한 사실을 본인들이 시인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표현을 빌리자면 들러리까지 사전에 모의하는 등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담합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황을 뜯어 보면 "담합을 한 주제에 무슨 변명이냐"고 일방적으로 돌을 던지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8백44억원어치를 납품한 인천정유에 부과된 과징금이 4백75억원이나 됐다는 사실은 법률적용의 타당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12일 과징금을 2백85억원으로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 기업의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만한 수준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석유소매과정에서의 담합을 색출하겠다며 조사를 실시했다가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재조사까지 벌여 ''표적조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지난해 내내 공정위 조사를 받느라 영업을 못할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위에서 영업해온 정유사들에 허점이 없을리 없고 공정위가 여기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업계의 현실도 도외시한 채 무작정 ''본때 보이기''에 나선다면 경제검찰이라는 공정위의 권위에 흠집이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성택 산업부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