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남단 휴양지인 플로리다주 키 라르고.

지난주말 1백여명이 넘는 제조업경영자들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전국제조업협회(NAM)의 동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사회를 마치고 "경기하강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자체설문조사 응답자인 88명중 60%인 53명이 ''연내에 경기회복이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보였다는 우울한 결과도 제시했다.

그러나 비공식으로 흘러나온 얘기들은 조금 다르다.

''공식발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계속적인 금리인하를 요구하기 위한 ''압력용''일뿐 실제 그렇게까지 어둡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의 경기하강은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급격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 바람이 조금씩 새는 것과 같은 통제가능한 양상"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첨단기술업체들이다.

1990년대 신경제를 이끌어낸 강력한 엔진인 이들이 지금 투자축소와 막대한 잉여생산설비로 어려움을 겪으며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인 벤 브로드벤트는 "올 1.4분기 첨단기술분야의 투자가 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0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첨단기술 업체들의 수익 악화 경고음은 설마했던 우량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투자감소를 겪어본 적이 없다"(에드 젠더 선마이크로시스템사장),"중소및 대기업을 막론하고 기존 주문까지 취소할 정도"(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 "통신업체들의 설비투자감소가 적어도 올해 안에는 회복되기 어렵다"(클레런스 챈드런 노텔네트웍스 최고운영책임자)...

그러나 희망의 목소리들도 싹트고 있다.

기업들이 첨단설비투자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줄이고 있을뿐이라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정보기술(IT)전선에서 크게 후퇴하지는 않을 것"(조셉 라렌지 델 컴퓨터부사장)이므로 "합리적인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노텔네트웍스의 존 로스 사장)이란 전망이다.

일반인들의 IT지출도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소비자신뢰지수를 발표하는 미국 컨퍼런스보드의 경제분석가인 린 플랑코는 "소비자신뢰지수가 떨어지는 것은 경기하락우려와 고용불안이 겹쳤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소비자들이 현상황을 불황이 아닌 저성장으로 보고 있어 소비감소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베어스턴스증권의 애널리스트 제프 릴러는 "인터넷사용인구 온라인쇼핑지출금액등 대부분의 지표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온라인쇼핑분야가 다시 성장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한다.

닷컴업계의 해고자수가 8개월만에 처음으로 줄어드는등 거품붕괴가 한풀 꺾이고 있다는 사인도 나오고 있다.

고용정보업체 챌린저그레이&크리스마스는 지난해 하반기이후 꾸준히 늘어나던 닷컴기업 해고자수가 지난 2월에는 1만1천6백49명으로 1월(1만2천8백28명)보다 소폭이나마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정도의 ''사인''들로 IT투자의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앞뒤가 캄캄하던 불투명성이 조금씩 해소되어 간다는 점에서 최악의 고비는 지난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