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김부식 이규보 이율곡 박지원...

역대 문인들의 글을 모은 나랏말씀 시리즈(솔)는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선인들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민족문화추진회가 번역한 이 시리즈엔 명문장가의 글 수백편 중 가장 뛰어난 것들이 실려있다.

그 중 ''이규보시문선''은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의 문학세계를 압축한 책이다.

''동국이상국집''에서 추려낸 부(賦)와 시화(詩話,문학평론)에 이규보의 문학적 주관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무릇 시란 뜻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말 꾸미는 것은 그 다음이다.

뜻은 또한 기운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기운의 우열로 말미암아 얕고 깊음이 있게 된다.

기운이 약한 자는 문장을 수식하는데 공을 들인다''

이규보는 자기의 작품을 미워하는 자의 글을 보듯 잘못된 것을 찾고 또 찾아 잘못이 없을 때에야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당대에 ''광객(狂客,미치광이 나그네)''이라 불리던 이규보는 서른살 넘도록 관직을 얻지 못했으나 올바른 길을 가면서 남을 속이지 않는다면 하늘도 위엄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며 당당해 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가는 길에 열하에 들러 그곳 문인들과 사귄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그는 오늘날 ''문체반정(文體反政)'',즉 문학 쿠데타를 일으킨 문장가로 기억되고 있다.

박지원은 지리멸렬한 고문를 배격하고 자유로운 문장을 만들어 썼다.

''뜻을 얻는 곳엔 두번 다시 가지 말아야 하니,만족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등.

정약용의 ''다산문선''은 여유당전서 중에서 기(記) 설(說) 논(論) 그리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담고 있다.

편지를 쓸 때는 그 편지가 사거리 번화가에 떨어져 원수가 보더라도 나에게 잘못이 없을 정도로 공정해야 한다는 유명한 글도 실려있다.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보자.

''경오년 여름에 파리가 극성을 부려 온 집안에 득실거렸다.

이는 죽여서는 안되는 것으로 굶어 죽은 자의 몸과 같다.

지난해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다 죽었다.

시체들을 길에 덮어 썩은 물이 강을 이루었다.

구더기가 생겨 파리가 되었으니 아,이 파리가 어찌 우리 유(類,인간)가 아니겠는가.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파리야 날아와서 음식 소반에 모여라.

이 기름진 고깃덩어리에 앉아라''

미물을 예로 당시의 부패한 사회를 비판한 이 글엔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이 담겨있다.

정약용은 일가가 폐족(廢族) 당한 뒤 과거길이 막힌 두 아들이 학문을 등한시 하자 벼슬길이 막혔다고 글을 읽지 않는다면 금수와 같다며 더욱 정진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눈물겹게 그려지기도 한다.

''아침에 햇빛을 먼저 받는 곳이 저녁 때 그늘이 빨리 든다.

운명은 돌고 도는 것이니 뜻있는 사람은 한 때의 재앙으로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