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설계사로 근무하던 김모(43)씨.

아파트를 사는 과정에서 빚이 늘어난 데다 친척의 빚보증을 잘못 서 지난 98년 개인(소비자) 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선의의 파산자"로 판정돼 면책결정을 거쳐 빚의 공포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그는 밥줄을 잃었다.

현행 파산제도에 따라 일단 파산선고를 받으면 금융거래 금지와 거주지 제한 등의 불이익에다 보험모집인 자격까지 박탈되기 때문이었다.

파산 신청자와 잠재적 파산자인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행 파산제도는 ''불운하지만 성실한'' 파산자에게 경제적 갱생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영원한 파산자''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영원한 파산으로 가는 비상구 =우리나라의 파산제도는 파산 선고시 공무원과 군인 경찰을 비롯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법률로 자격조건을 주는 직업은 물론 의사 약사 간호사 보험모집인 안경사까지 거의 모든 직업을 무차별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면책결정을 통해 복권되면 지위를 회복할 수 있지만 한번 잃은 직장을 되찾긴 어려운게 현실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세리사 등만 결격 사유로 인정하고 공무원 자위대원 교원 의사 등에 대해선 결격 사유로 삼고 있지 않다.

미국의 경우 지난 84년 이후 파산을 이유로 고용에 제한을 받는 것을 법으로 막고 있다.

◇ 돈 없으면 파산신청도 못한다 =빚을 갚지 못한 개인이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 소비자 파산을 신청하고 면책과 복권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신문 공고료와 송달료 등 1백70여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처한 개인 파산자가 마련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액수다.

파산에서 면책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목적중 하나는 채권자가 채무 변제를 강요하는 것을 막아보자는데 있다.

하지만 법원이 파산과 면책을 분리 판단함에 따라 파산 신청을 한 개인이 파산 선고를 받고 면책결정을 얻어내는 데엔 수개월이 소요된다.

채무자는 이 기간중 이뤄지는 채권자의 비정상적인 강요에 대처할 길이 없다.

"개인 파산의 경우 파산 절차와 면책 절차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입법적 고려가 필요하다"(법원 관계자)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 소비자 워크아웃제 필요 =현행 소비자파산제도는 채무자(채권자도 가능)가 일단 파산 신청을 하면 면책 등의 절차를 통해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후적인 구제제도만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이나 잉글랜드 등은 채무자가 ''파산자''로 낙인찍히기 전에 채무자 스스로 변제계획을 세워 빚을 갚고 회생의 길을 찾도록 하는 ''갱생(更生)형 절차''를 두고 있다.

법원은 적극적인 중재와 감독을 통해 채무자와 채권자가 공평하게 빚문제를 풀어나가도록 돕는다.

소위 ''소비자 워크아웃제''다.

국내에도 채무자와 채권자가 법원의 중재로 채권관계를 해결하는 화의(和議)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개인 채무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는 "IMF체제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된 제도엔 상당한 진척이 있었지만 개인의 부채를 구조조정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는 소홀했다"며 "채권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가운데 선의의 파산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관련법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