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자 마자 사채 이자율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등했다.

사채시장에서는 월 3할에서 최고 월 9할에 달하는 고금리 약정이 일반화됐다.

또 할부금융회사 등 제도금융권에서조차 고리의 연체이율이 성행했다.

국고채시장과 회사채시장 등 채권시장의 금리는 거의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사채시장의 이자율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무리 단기간의 대출이라지만 월 30%의 초고금리는 1년이 되면 원본의 3.6배에 달하게 된다.

경제구조가 제대로 된 나라에 있어서는 안될 엄청난 폭리다.

고리대금업자들은 채권회수를 위해 ''해결사''들로 ''진상조사반''을 구성해 채무자에게는 물론 가족 친지들에게까지 협박하고 공갈, 극한상황으로까지 내몬다.

그러면서도 ''약정''을 근거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간다.

''고리채(高利債)를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제도금융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또 2백여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들은 돈을 빌릴 마땅한 방법이 없다.

때문에 고리대금업자들의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이같은 사채시장에서는 외국자본을 비롯해 검은 돈의 전주(錢主)들까지 사채업자 뒤에 숨어 고리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자제한법''은 지난 62년 제정된 이래 서민이나 중소기업자 등 열악한 채무자 보호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법리상의 문제점이나 실효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이자율 결정이 제약될 수 있다''는, 순전히 재정금융상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전격적으로 폐지되었다.

그 배경에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강력한 폐지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예를 보아도 사회질서의 유지.독립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이자제한법을 서둘러 폐지한 것은 경솔한 처사였다.

일본은 ''이식제한법''에서, 그리고 대만은 ''민법''에서 연 2할의 제한이율로써 이자를 규제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은 고리대금업자의 연 1백9.5%를 초과하는 과도한 이자약정에 대해서는 출자취체법(出資取締法)에 의거, 형사처벌하고 있다.

요즘 시중 실세금리인 3년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이 널뛰기를 해 금융시장이 불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채시장의 금리와는 비교할 바가 안된다.

사채시장 이용자는 대부분 영세사업자이거나 개인들로서 과도한 고리약정으로 피해를 보는 채무자가 속출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금리보다 4배 내지 5배를 초과하는 과도한 고리약정은 민법 제104조의 폭리행위 내지 제103조의 반사회질서에 해당돼 ''무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법리를 통해 채무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현실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초고금리업자를 근본적으로 다루기 위해 신속한 입법조치가 절실하다.

과도한 고리약정을 하는 대부업자를 엄단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출자취체법과 같이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입법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병행해 종전의 ''이자제한법''을 부활, 최고 이율을 규제하든지 또는 대만처럼 민법에 명문화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복리약정과 선이자문제도 함께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률은 ''제정''도 신중해야 하지만, 특히 사회질서와 관계되는 법률을 ''폐지''할 때에는 현실에 대한 충실하고도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고금리가 예상되면 될수록 오히려 궁박한 처지에 있는 채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 이자제한법 폐지부터 생각하는 것은 정책결정의 앞뒤가 잘못됐다고 보아야 한다.

고리로 피해를 보는 서민을 감안하면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허울 좋은 ''이자의 자유결정론''이 경제적 강자에게 고금리를 보장해 주고, 경제적 약자에게는 고통과 폐해를 안겨주는 무기로 악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원본을 모(母)라 하고 이자를 자(子)로 표현하며, 자가 모보다 클 수 없으니 이자가 절대로 원본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이자를 규제하는 ''자모정식법(子母停息法)''이 있었다.

우리는 고려시대보다 못한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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