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우리집 녀석이 다니던 유치원에는 "파란 의자(blue chair)"란 게 있었다.

보기엔 평범해도 그건 범상한 물건이 아니었다.

잘못을 하면 쫓겨나 앉아 조용히 반성하는 일종의 "독방"같은 것이었다.

아이 데리러 갈 때마다 혹시나 하며 그 의자쪽부터 쳐다보는 심정은 당해 본 부모만 안다.

그렇게 그 의자 단골 객(客) 생활을 마치고 간 초등학교에서도 예(例)의 말썽은 여전했다.

하루는 방과 후에 방문까지 잠그고 뭘 하는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다.

가서 보니 열심히 편지 한 통을 쓰는데 그 옆에는 제 엄마 싸인 연습을 한 흔적도 있었다.

사실인즉슨 여러 차례 경고에도 불구,"다마고치"를 갖고 등교했다가 압수를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 이름을 빌어 간곡한 사죄와 부탁 말씀을 적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꾸짖기엔 너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장을 이겨 보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비유할 때 가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아이큐(Intelligence Quotient)가 1만3천이나 되는 시장에게 우린 적수가 못 된다.

까마득히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머리는 굴려서 뭣하나.

제아무리 지혜를 짜 본들 선생님 앞에 가짜 편지 내미는 초등학교 1년생 정도다.

그러니 공연히 알밤 맞지 말고 늘 순종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하면 계좌마다 일일이 촌수까지 알아본다.

증권사 직원들 관리계좌를 삼촌,사촌,사돈의 팔촌까지 일일이 누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꼭 벌어 줘야 면이 서는 가까운 계좌는 어김없이 혼을 낸다.

벌어 줘 봐야 딱히 좋은 소리도 못 듣는 그런 멀찍한 촌수만 먹여 준다.

굳은 각오로 한 번 붙자 하면 철저히 응징하고,모르겠다 내 돈 아닌데 하고 포기하면 되려 자비를 베푼다.

촌수를 보고, 또 우리 마음을 떠 보고,합격 판정이 나야만 돈을 보태 주는 것이다.

돈을 벌어 주고 말고는 내가 아닌 시장의 권한임을 반드시 확인시키고야 만다는 말이다.

여기 어느 지점장의 고백은 전방 소총수 증권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임자가 계좌 다섯을 남기고 떠났는데 모두 유복한 사모님들 계좌였다.

그 중 네 분은 외모도 준수하고 교양도 있는 반면,유독 한 분만 말도 많고 매너도 엉망이었다.

이 분 성화를 견디다 못한 지점장은 마침내 이 계좌에만 특별대우(?)를 결심했다.

싸게 살 것도 일부러 상한가에 잡고,비싸게 팔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한가에 넣고 지점장을 업신여긴 맛이 얼마나 쓴지 한 번 단단히 보여 드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몇 개월 후 학기말 성적표를 받은 지점장은 더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그 한 계좌만 벌고,신경 써서 보살핀 나머지 넷은 몽땅 깡통을 차 버린 것이었다.

시장은 정말 천재다.

작전을 누가 하는가 보라.

모두가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이다.

허수주문,실수주문을 수없이 넣었다 뺐다 하는 면면들을 보라.

전부 시장에 도통한 사람들이다.

시장의 천재성에 실력으론 도저히 안됨을 깨친 똑똑한(?) 이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처럼 구차하게 돈 버는 게 싫은 이상에는 무릎을 꿇자.

생전 얼굴도 못 본 남의 친척 촌수까지 알아 맞추는 선생님을 무슨 재간으로 이기겠는가.

내 "다마고치"는 선생님이 빼앗은 게 아니라 보관 중이다.

본전 생각은 굴뚝 같지만 선생님 마음이 돌아설 때를 기다리자.

순종이 진정한 실력이다.

김지민 <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투자클리닉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