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를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 상무보로 선임,후계구도를 공식화했다.

따라서 재용씨는 행동반경을 크게 넓혀가며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전반의 업무를 하나둘 챙기며 서서히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26세에 동양방송 이사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재용씨의 경영 참여는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측은 아직 경영권 승계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재용씨의 경영수업 성적표에 따라서는 삼성의 3세 경영이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하게 되나=재용씨는 형식상 삼성전자 경영기획팀에 소속돼 있다.

경영기획팀은 사업전략 그룹과 미래전략 그룹을 축으로 몇개의 태스크포스팀으로 구성돼 있으며 재용씨는 미래전략쪽의 업무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일도 그의 소관이다.

재용씨는 언론 보도와 달리 인터넷 사업보다 컴퓨터 등 제조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박사과정에서도 컴퓨터 산업의 전후방 연관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지난해 인터넷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은 유능한 삼성 인력의 벤처행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재용씨 측근은 설명한다.

현재 미국에 있는 재용씨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메릴린치 데이비드 코만스키 회장 등 현지 금융계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아 선진 기업의 R&D(연구개발)센터를 찾아가 현지 기술진과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재용씨의 한 측근은 소개했다.

◇경영권 승계는 언제쯤=재용씨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다.

삼성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재용씨의 그룹경영권 승계 시기는 그가 얼마나 빨리 경영능력을 입증해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또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로 불거진 편법 상속에 대한 여론의 향방도 경영권 승계 시기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다.

삼성 관계자는 "재용씨가 경영권 승계 기반을 닦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시점을 논의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경영 수업을 통해 실무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경영 바통을 넘겨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그룹의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그는 전했다.

국내 최대 그룹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최소한 10년 이상 경영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