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하게 빛나기로 하면 가짜 다이아몬드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누구도 가짜 다이아몬드를 귀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흘린 땀만큼 귀중해진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희생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에로티즘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1897∼1962)는 이를 두고 ''시는 파멸에 의해서만 창조된다''고 말했다.
파멸이란 인생의 파멸이다.
시는 시인의 인생을 담보로 잡으니 시인의 삶은 곤궁을 면할 수 없다.
최근 번역된 조르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문학동네,조한경 옮김)은 철학적 예술론집이다.
바타이유는 프랑스 파리 국립 고문서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앙리 베르그송 등과 교류했고 철학 문학 경제학 등을 넘나들며 죽음과 에로티즘 문제를 극한까지 추구했다.
그에 대해 철학자 미셀 푸코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번 책에는 학문적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사고를 펼쳤던 바타이유의 통찰력 넘치는 글이 담겨 있다.
바타이유는 ''창조적 소모''란 개념을 통해 예술의 존재의의를 밝힌다.
역대 사회를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하며 에너지 과잉의 해소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살피고 있다.
바타이유는 생산과 소비 이외 활동인 전쟁,사치,장례,종교예식 기념물,예술을 잉여의 필수불가결한 소모로 설명한다.
성스러운 것은 파멸에 의해 구현된다는 주장이 독창적이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