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재무상(81)이 12일로 각료 재임 기간에서 태평양 전쟁 후 지금까지의 일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총리직 한번을 비롯,지난 1월 재무상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의 대장상 자리를 포함해 모두 1천8백29일이다.

일본 정계의 최고 경제통으로 꼽히는 그에게는 ''헤이세이의 고래키요''라는 닉 네임이 따라 다닌다.

고래키요는 전쟁전 일본을 대공황에서 구해 냈다고 해서 ''일본의 케인즈''로 불리우는 다카하시 고래키요(1854-1936)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미야자와 재무상은 다카하시 고래키요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총리 2번에 대장상을 7번이나 지낸 다카하시 고래키요에 비해 횟수는 짧지만 그래도 두 자리를 모두 거쳤다.

다카하시가 유효수요 창출 정책을 밀고 나간 것처럼 미야자와 재무상도 비슷한 노선을 걸었다.

나카소네 내각에서 처음 대장상을 맡은 지난 86년에는 플라자합의후 엔고(高)의 덧에 걸린 일본 경제를 불황에서 구출해 낸다며 저금리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그였다.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친 덕에 일본 경제는 엔고 시련을 박차고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러나 그 결과 일본 경제에는 거품이 덮히기 시작했고 미야자와 재무상은 지금도 버블경제의 싹을 제공한 장본인의 비난을 듣는다.

총리를 지낸 후 2번째 대장상을 맡은 오부치 내각에서 그는 일본 경제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재정확대와 국채증가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오히려 2001년 말 일본의 장기국채 잔고는 6백66조엔에 달해 자신이 처음 대장상을 지냈을 때에 비해 3배에 달할 전망이다.

일본 야당은 그에게 정책 실패를 들이대며 물러나라며 다그치고 있다.

언론도 다카하시 고래키요와는 이미지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며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렇지만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치 않는다"면서도 재임기록을 연일 경신해 가고 있다.

일본의 젊은 학자, 기업인들은 "일본은 이대로 정말 안된다"며 "모두 바꿔 치워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기성층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 권력의 상층부는 다르다.

금방 물러 날 것 같던 모리 요시로 총리도 사임의사를 표명하기까지 지루하리 만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민들은 나라 경제가 표류한다고 아우성 치지만 정부는 급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일본적 미덕의 하나라지만 일본 정치의 현주소는''우유 부단''이 경제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