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조승용 <넷컴스토리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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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그저 상대적인 개념일 뿐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냐에 따라 그 정의도 달라지게 되죠.그런 점에서 저는 성공이라는 옷을 걸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국내 스토리지(데이터저장장치)산업의 개척자로 불리는 넷컴스토리지(옛 창명정보통신)의 조승용(48)사장.성공비결을 묻는 기자를 당혹케하며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5백억원 가까운 연매출액에 두곳의 해외 현지법인까지 둔 벤처기업의 수장이건만 그에겐 이 모든 것이 그저 1백% 완벽한 성공을 위한 중간과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10년간 꾸준하게 저장장치라는 분야의 한우물만 판게 "성공 아닌 성공"의 비결이 되지 않을까요" 끈질긴 질문 공세에 수줍게 말을 이어가는 조 사장.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그를 주위에서는 "악바리"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욕심도 많은 사람이다.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던 어려움 앞에서,앞이 보이지 않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는 무모하리만치 한길만을 고집해왔다.
주위의 권유와 만류가 있었음에도 저장장치 외에는 한번도 한눈을 판 적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바로 그 근성이 지금의 조사장과 회사를 지탱하게 해준 버팀축이었다.
그가 넷컴스토리지의 전신인 창명정보통신을 설립한 건 91년.미국 스토리지 솔루션 회사인 울트라스토의 한국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저장장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초기에는 외국에서 주로 하드디스크나 테이프드라이브 등의 저장장치를 들여와 국내 기업에 판매하는 유통사업에 치중했다.
3~4년간 잘나가던 사업도 거래처의 잇따른 부도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당시 주위사람들은 그동안 번 돈으로 새로운 사업이나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자금난의 압박속에서 그의 "악바리"근성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저장장치의 단순유통업에서 벗어나 자체제품 개발에 주력하기로 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당시만해도 저장장치에 대한 국내 개발인력이 전무했던 것은 물론 그 개념조차 명확치 않았던 때였기에 주변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소 뿐이었다.
조 사장은 "10년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내린 가장 어려운 결정이자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원들과 회사에서 숙식을 거의 해결하다시피하며 연구개발에 힘쓰기를 1년.드디어 96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무정지 저장장치(RAID)를 개발해 독자브랜드로 시장에 선보였다.
여러 개의 하드디스크를 연결해 거대한 단일 드라이브를 만드는 새로운개념의 저장장치였다.
외환위기이후 디지털경제로의 산업재편과 함께 저장장치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이 회사의 사세도 급격히 커졌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빛을 발한 한편의 성공스토리였다.
넷컴스토리지는 지난 99년말 코스닥시장에 등록돼 이제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는 공개기업이 됐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로서는 성공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봉사를 해야하는 기업가로서의 성공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그동안 모아온 재산과 명성도 그저 잠시 자신에게 머물러있는 것 뿐이라고 강조하는 조 사장.자신의 모교인 중앙고등학교 장학재단에 자사주식 20만주를 기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회사가 이룬 모든 것을 종업원 주주들과 더불어 나누고 사회에 고루 베푸는 것입니다. 아마 제 평생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죠"
성공이라는 단어를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인생철학.그것이 그의 성공비결인지도 모른다.
(02)2186-2899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국내 스토리지(데이터저장장치)산업의 개척자로 불리는 넷컴스토리지(옛 창명정보통신)의 조승용(48)사장.성공비결을 묻는 기자를 당혹케하며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5백억원 가까운 연매출액에 두곳의 해외 현지법인까지 둔 벤처기업의 수장이건만 그에겐 이 모든 것이 그저 1백% 완벽한 성공을 위한 중간과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10년간 꾸준하게 저장장치라는 분야의 한우물만 판게 "성공 아닌 성공"의 비결이 되지 않을까요" 끈질긴 질문 공세에 수줍게 말을 이어가는 조 사장.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그를 주위에서는 "악바리"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욕심도 많은 사람이다.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던 어려움 앞에서,앞이 보이지 않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는 무모하리만치 한길만을 고집해왔다.
주위의 권유와 만류가 있었음에도 저장장치 외에는 한번도 한눈을 판 적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바로 그 근성이 지금의 조사장과 회사를 지탱하게 해준 버팀축이었다.
그가 넷컴스토리지의 전신인 창명정보통신을 설립한 건 91년.미국 스토리지 솔루션 회사인 울트라스토의 한국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저장장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초기에는 외국에서 주로 하드디스크나 테이프드라이브 등의 저장장치를 들여와 국내 기업에 판매하는 유통사업에 치중했다.
3~4년간 잘나가던 사업도 거래처의 잇따른 부도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당시 주위사람들은 그동안 번 돈으로 새로운 사업이나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자금난의 압박속에서 그의 "악바리"근성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저장장치의 단순유통업에서 벗어나 자체제품 개발에 주력하기로 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당시만해도 저장장치에 대한 국내 개발인력이 전무했던 것은 물론 그 개념조차 명확치 않았던 때였기에 주변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소 뿐이었다.
조 사장은 "10년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내린 가장 어려운 결정이자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원들과 회사에서 숙식을 거의 해결하다시피하며 연구개발에 힘쓰기를 1년.드디어 96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무정지 저장장치(RAID)를 개발해 독자브랜드로 시장에 선보였다.
여러 개의 하드디스크를 연결해 거대한 단일 드라이브를 만드는 새로운개념의 저장장치였다.
외환위기이후 디지털경제로의 산업재편과 함께 저장장치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이 회사의 사세도 급격히 커졌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빛을 발한 한편의 성공스토리였다.
넷컴스토리지는 지난 99년말 코스닥시장에 등록돼 이제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는 공개기업이 됐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로서는 성공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봉사를 해야하는 기업가로서의 성공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그동안 모아온 재산과 명성도 그저 잠시 자신에게 머물러있는 것 뿐이라고 강조하는 조 사장.자신의 모교인 중앙고등학교 장학재단에 자사주식 20만주를 기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회사가 이룬 모든 것을 종업원 주주들과 더불어 나누고 사회에 고루 베푸는 것입니다. 아마 제 평생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죠"
성공이라는 단어를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인생철학.그것이 그의 성공비결인지도 모른다.
(02)2186-2899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