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한국 기반 다진 경제계 대부 .. 故 박충훈 권한대행 생애/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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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별세한 박충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60년대 경제부총리와 두차례에 걸쳐 상공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수출 한국''의 기반을 다진 경제 원로다.
상공부 장관 시절 수출이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하자 ''수출의 날''이 지정되도록 산파역을 해 ''수출한국의 기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군 소장 출신으로 경리책임자로 복무하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이 상공부 차관에 임명하면서 3공화국 경제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당시 최대의 목표였던 석유화학과 종합제철 등 중공업 분야를 육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점이 인정돼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줄곧 ''경제계 대부''로 대접받았다.
부총리를 끝으로 관직에서 일단 물러난 그는 73년부터 79년까지 7년동안 무역협회장을 지냈고 능통한 영어를 바탕으로 한·미 경제협의회의 한국측 위원장으로 활동,3공 말기 대미 경제외교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3공의 대표적 경제 테크노크라트였던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기간은 80년 8월16일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전두환씨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당선된 8월27일까지 12일간이다.
80년 신군부 집권의 기폭제가 된 5·17 계엄확대 조치 직후인 5월21일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돼 1백50여일간 근무하다 최 전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서 대행직을 맡게 된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경숙(77)씨와 2남4녀가 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
상공부 장관 시절 수출이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하자 ''수출의 날''이 지정되도록 산파역을 해 ''수출한국의 기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군 소장 출신으로 경리책임자로 복무하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이 상공부 차관에 임명하면서 3공화국 경제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당시 최대의 목표였던 석유화학과 종합제철 등 중공업 분야를 육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점이 인정돼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줄곧 ''경제계 대부''로 대접받았다.
부총리를 끝으로 관직에서 일단 물러난 그는 73년부터 79년까지 7년동안 무역협회장을 지냈고 능통한 영어를 바탕으로 한·미 경제협의회의 한국측 위원장으로 활동,3공 말기 대미 경제외교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3공의 대표적 경제 테크노크라트였던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기간은 80년 8월16일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전두환씨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당선된 8월27일까지 12일간이다.
80년 신군부 집권의 기폭제가 된 5·17 계엄확대 조치 직후인 5월21일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돼 1백50여일간 근무하다 최 전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서 대행직을 맡게 된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경숙(77)씨와 2남4녀가 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