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시내 한 회색빛 대리석 건물 1층 로비에는 퀴즈놀이기구가 하나 있다.

버튼을 누르면 질문이 나온다.

"성장률과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 금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려야 한다"는 정답을 대면 팡파르가 울리고 화면에 자막이 뜬다.

"축하합니다. 2046호실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미국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본부.

2046호실은 그 유명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집무실이다.

집무실의 큼직한 책상위에는 다섯 대의 PC가 놓여 있고 그는 수시로 컴퓨터 자판기의 키보드 A를 친다.

그 즉시 50여개의 경제관련 숫자와 지표들이 PC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우와 나스닥지수, 시장금리, 물가, 통화공급량 등이다.

이 모두 그린스펀이 금리정책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것들이다.

요즘 세계 주식투자자들의 소원은 ''그린스펀 되기(Being Greenspan)''다.

요동치는 증시속에서 투자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린스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내가 그린스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릴지를 미리 알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린스펀 되기''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좀체 속마음을 열어보이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경제현상을 설명할 때 최대한 모호한 용어를 사용해 시장분석가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단어 하나를 놓고 시장에선 서로 다른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기 일쑤다.

당연히 일반투자자들은 방향을 못잡고 우왕좌왕한다.

그래서 전세계 투자자들은 모두 그린스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린스펀이 되고 싶어한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결정할 21일 새벽(한국시간)이 임박했다.

이 때문에 ''그린스펀이 되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은 지금 숨을 죽이고 있다.

금리를 얼마나 내릴지, 또 경제상태를 어떤 단어로 묘사할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적을수록 좋다.

그런 사람이 적을수록 세계경제는 잘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정훈 국제전문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