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들은 의원이나 약국에서 보낸 ''건강보험 요양급여 비용 청구서''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실제 진료 내역인지 의심이 가는 의료기관이 많은데다 병·의원과 문전 약국의 담합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안양의 A이비인후과는 하루 평균 4백80여명의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했다며 보험급여를 달라고 요청했다.

화장실 출입도 삼간채 하루 8시간 진료한다고 해도 1분당 환자를 1명씩 진료해야만 기록할 수 있는 숫자다.

혼자 일하는 원장이 ''철인''이 아닌 이상 이렇게 매일 환자를 볼 수는 없다.

파주의 B약국에서는 하루 평균 3백70건을 조제하고 있다.

약사는 고작 1명뿐이다.

9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할 때 1건을 조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분30초.

공정이 자동화된 기계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기네스북''감 기록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로변에 인접한 C 약국.

인근 10여개 의원에서 집중적으로 환자를 받아 하루 8백건에 달하는 처방전을 처리하고 있다.

환자들은 다른 약국을 찾아갈 수 없다.

인근 의원과 담합, 이약국만 해당 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D의료원 정문에서 50여m 떨어진 E약국은 의료원에서 발급되는 2천여건의 일일 처방전중 6백여건을 흡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동네약국의 경우 하루 30여건의 처방전도 흡수하지 못하는 데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복지부는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처방과 조제건수의 경우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않은채 처방전만 즉시 끊어주고 약국은 처방약을 미리 조제해 놓았다가 환자가 오면 곧바로 내줄 때만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들은 의사와 약사간 담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호주머니만 털리고 있다는 얘기다.

의사들이 제약회사에 요구하는 뒷돈 관행도 여전하다.

모 제약사 사장은 "의사들이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자신들이 처방한 의약품 가격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리베이트로 달라고 영업사원에게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의사들은 진료는 하지 않고 단골이나 브로커에게 처방전을 남발하고 있다.

주사제 처방을 낼 경우 의원이 갖고 있는 주사제로 직접 환자에게 주사하고 인근 약국에서 나중에 약을 받는 행태도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같은 실태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20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의원 4천9백96곳중 하루 3백명 이상 환자를 진료한 의원이 31곳(0.6%)에 달했다.

또 △2백∼2백99명 2백3곳(4.1%) △1백50∼1백99명 4백25곳(8.5%) △1백∼1백49명 1천76곳(21.5%) 등 1천7백35곳이 하루 1백명 이상 환자를 진료했다.

또 지난해 12월 조사한 1만2천7백59개 약국중 하루 1천건 이상 조제한 약국도 38곳이나 됐다.

3백건 이상 조제한 약국은 1천90곳으로 집계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가 평균 1분에 1명씩 환자를 봐서는 진료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약사도 복약지도를 제대로 하려면 하루 1백20건 이상 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이같은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적정수준 이상의 처방 및 조제건수에 대해서는 보험급여를 삭감하는 ''차등수가제''를 5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김도경·정종호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