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우먼] 정성자 <아이티솔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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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구축및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아이티솔루션의 정성자(37)대표가 친한 사람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성공해서 텔레비전 "성공시대"에 꼭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성공하라"는 뜻의 격려가 아니다.
"그토록 난리법석을 떨었으니까 성공을 해도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씨는 직원이 16명 뿐인 조그만 벤처기업 대표이다.
그가 운영하는 기업은 연간매출이 10억원대에 머물 만큼 작다.
"IT(정보기술)벤처 1세대","주목해야 할 여성 IT벤처CEO(최고경영자)"란 말을 듣는 정 대표에겐 어울리지 않는 규모다.
그러나 정씨는 "비싼 수업료 냈으니까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 대표는 창업이전에 4개 회사를 거쳤다.
지난 87년 동국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팍스컴오토메이션이란 회사에 입사,바코드신분증 개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포스데이타에서 PC통신 "포스서브" 기술기획을 담당했고 정보소프트로 옮겨 토플 학사관리 프로그램 "토플2000" 개발을 주도했다.
이어 언어공학연구소에서 DB팀장으로 일했다.
3년전인 98년2월 정씨는 언어공학연구소 사내벤처인 아이티솔루션의 총괄팀장을 맡았고 석달 뒤 이 사내벤처가 분사하면서 대표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씨에게 시련은 없었다.
아이티솔루션은 웹사이트 기획.개발.유지보수를 포함한 토털 컨설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IMF(국제통화기금)불황기라지만 흑자를 내는 것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아르바이트 사원의 실수로 사무실에 화재가 발생,4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고 말았다.
이 바람에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했다.
다행히 정씨한테 컨설팅을 받았던 벤처기업 사장이 사무실 한켠을 공짜로 빌려줘 직원들이 집에 있는 PC를 가져와 재기를 모색했다.
반년 뒤엔 정보통신부가 서울 강남역 인근에 마련한 창업지원실에 입주했다.
정씨는 회사를 살리려고 적금을 깨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 했다.
하지만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사가 살아나기 시작할 무렵 엔지니어 5명이 한꺼번에 입대하고 말았다.
남은 사람은 정 대표와 여직원 2명.하는수없이 수주해둔 프로젝트를 다시 중단하고 엔지니어들을 새로 뽑아야 했다.
게다가 정씨마저 위경련과 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시련 속에 쌓은 노하우 덕에 컨설팅 주문이 밀려들어 올해는 흑자로 돌아설 수 있게 됐다.
정씨는 정부와 국회에 자문을 하는 입지까지 확보했다.
작년말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물건을 팔고자 하는 기업과 특정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전자상거래 솔루션 "인텔리전트샵" 개발도 끝냈다.
이제부터 솔루션 수요처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정 대표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경영자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돕는 컨설팅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성공해서 텔레비전 "성공시대"에 꼭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성공하라"는 뜻의 격려가 아니다.
"그토록 난리법석을 떨었으니까 성공을 해도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씨는 직원이 16명 뿐인 조그만 벤처기업 대표이다.
그가 운영하는 기업은 연간매출이 10억원대에 머물 만큼 작다.
"IT(정보기술)벤처 1세대","주목해야 할 여성 IT벤처CEO(최고경영자)"란 말을 듣는 정 대표에겐 어울리지 않는 규모다.
그러나 정씨는 "비싼 수업료 냈으니까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 대표는 창업이전에 4개 회사를 거쳤다.
지난 87년 동국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팍스컴오토메이션이란 회사에 입사,바코드신분증 개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포스데이타에서 PC통신 "포스서브" 기술기획을 담당했고 정보소프트로 옮겨 토플 학사관리 프로그램 "토플2000" 개발을 주도했다.
이어 언어공학연구소에서 DB팀장으로 일했다.
3년전인 98년2월 정씨는 언어공학연구소 사내벤처인 아이티솔루션의 총괄팀장을 맡았고 석달 뒤 이 사내벤처가 분사하면서 대표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씨에게 시련은 없었다.
아이티솔루션은 웹사이트 기획.개발.유지보수를 포함한 토털 컨설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IMF(국제통화기금)불황기라지만 흑자를 내는 것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아르바이트 사원의 실수로 사무실에 화재가 발생,4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고 말았다.
이 바람에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했다.
다행히 정씨한테 컨설팅을 받았던 벤처기업 사장이 사무실 한켠을 공짜로 빌려줘 직원들이 집에 있는 PC를 가져와 재기를 모색했다.
반년 뒤엔 정보통신부가 서울 강남역 인근에 마련한 창업지원실에 입주했다.
정씨는 회사를 살리려고 적금을 깨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 했다.
하지만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사가 살아나기 시작할 무렵 엔지니어 5명이 한꺼번에 입대하고 말았다.
남은 사람은 정 대표와 여직원 2명.하는수없이 수주해둔 프로젝트를 다시 중단하고 엔지니어들을 새로 뽑아야 했다.
게다가 정씨마저 위경련과 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시련 속에 쌓은 노하우 덕에 컨설팅 주문이 밀려들어 올해는 흑자로 돌아설 수 있게 됐다.
정씨는 정부와 국회에 자문을 하는 입지까지 확보했다.
작년말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물건을 팔고자 하는 기업과 특정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전자상거래 솔루션 "인텔리전트샵" 개발도 끝냈다.
이제부터 솔루션 수요처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정 대표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경영자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돕는 컨설팅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