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천부적인 사업수완" .. 내가 본 鄭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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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명예회장과 친분이 있던 재계 등의 명사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한국경제의 거목과 지냈던 지난날을 회고했다.
이들은 고인이 겉으로는 불도저같은 사람으로 보였지만 속으론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을 지녔었다고 인간 정주영의 진면목을 소개했다.
<> 구평회 (전 한국무역협회장) =고인은 무엇보다 국제문제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남다른 국제감각을 가졌다는데 대해 매우 탄복했다.
따지고 보면 고인의 천부적인 국제감각이 우리 민간외교 활동에 커다란 획을 긋고 급기야는 올림픽 유치라는 민족적 금자탑을 쌓은 원동력이 됐다.
아산은 복잡한 것을 거두절미하고 요약해서 간파해내는 판단력이 남달랐다.
사업에 관해 말한다면 고인은 논리정연하게 분석한 브리핑이라든지 서류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판단력으로 사업방향을 전격적으로 결정하곤 했다.
<> 김상하 (전 대한상의 회장) =1988년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출돼 신임인사차 고인을 찾아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분은 11년이나 손아래인 나에게 존대말을 쓰면서도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환대해 줬다.
흔히들 아산이 통이 크고, 선이 굵고, 추진력과 돌파력의 화신처럼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의 대면에서 이와는 전혀 딴판이라고 할 정도로 자상함과 세심함도 함께 갖춘 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을 착수하기 전에 지난 30년대 이뤄졌던 삼양사의 고창 앞바다 간척지까지 찾아갔던 치밀함은 내심 탄복케 하는 대목이다.
<>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 =고인을 처음 본 것은 5.16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그 때 고인이 다른 두 분의 건설회사 사장과 박 의장을 만나러 왔는데, 당시의 분위기로는 기업인이 최고회의에 들어올 때는 어느 정도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첫 눈에 대단한 힘과 기개를 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고인이 전경련 회장을 맡는 동안 내가 부회장으로 종종 함께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회장님은 골프 스타일도 중후장대형"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 남덕우 (전 국무총리) =고인은 거대한 재력을 축적했지만 사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했다.
비행기를 같이 탈 때였는데 고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비닐가방 하나였다.
언젠가 바지 뒷주머니 아래의 낡은 곳을 재봉틀로 박은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할 당시엔 자기가 생각하는 공법을 사용하면 비용이 반감될 수 있다고 진언해 재원조달에 고심하는 박 대통령에게 큰 용기를 줬다.
소양강 댐을 건설할 때도 흙을 많이 사용하는 공법으로 제방을 쌓는게 더 견고하고 비용이 절감된다고 했다.
고인이 만든 소양강 댐은 아직까지 아무런 탈이 없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
이들은 고인이 겉으로는 불도저같은 사람으로 보였지만 속으론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을 지녔었다고 인간 정주영의 진면목을 소개했다.
<> 구평회 (전 한국무역협회장) =고인은 무엇보다 국제문제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남다른 국제감각을 가졌다는데 대해 매우 탄복했다.
따지고 보면 고인의 천부적인 국제감각이 우리 민간외교 활동에 커다란 획을 긋고 급기야는 올림픽 유치라는 민족적 금자탑을 쌓은 원동력이 됐다.
아산은 복잡한 것을 거두절미하고 요약해서 간파해내는 판단력이 남달랐다.
사업에 관해 말한다면 고인은 논리정연하게 분석한 브리핑이라든지 서류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판단력으로 사업방향을 전격적으로 결정하곤 했다.
<> 김상하 (전 대한상의 회장) =1988년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출돼 신임인사차 고인을 찾아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분은 11년이나 손아래인 나에게 존대말을 쓰면서도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환대해 줬다.
흔히들 아산이 통이 크고, 선이 굵고, 추진력과 돌파력의 화신처럼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의 대면에서 이와는 전혀 딴판이라고 할 정도로 자상함과 세심함도 함께 갖춘 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을 착수하기 전에 지난 30년대 이뤄졌던 삼양사의 고창 앞바다 간척지까지 찾아갔던 치밀함은 내심 탄복케 하는 대목이다.
<>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 =고인을 처음 본 것은 5.16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그 때 고인이 다른 두 분의 건설회사 사장과 박 의장을 만나러 왔는데, 당시의 분위기로는 기업인이 최고회의에 들어올 때는 어느 정도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첫 눈에 대단한 힘과 기개를 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고인이 전경련 회장을 맡는 동안 내가 부회장으로 종종 함께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회장님은 골프 스타일도 중후장대형"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 남덕우 (전 국무총리) =고인은 거대한 재력을 축적했지만 사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했다.
비행기를 같이 탈 때였는데 고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비닐가방 하나였다.
언젠가 바지 뒷주머니 아래의 낡은 곳을 재봉틀로 박은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할 당시엔 자기가 생각하는 공법을 사용하면 비용이 반감될 수 있다고 진언해 재원조달에 고심하는 박 대통령에게 큰 용기를 줬다.
소양강 댐을 건설할 때도 흙을 많이 사용하는 공법으로 제방을 쌓는게 더 견고하고 비용이 절감된다고 했다.
고인이 만든 소양강 댐은 아직까지 아무런 탈이 없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