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났는데도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개구리란 놈이 뛰어 나오질 않고 숨어버렸다.

지난 겨울은 눈도 많이 오고 유난히 추웠다.

그래서 인지 어느해 보다도 더 따뜻한 봄햇살이 기다려진다.

''한일(閑日)''(캔버스에 유채,112x193㎝)은 박상옥(1915~1968) 화백이 환도직후인 1954년 제3회 국전(國展)에 출품,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그림은 박 화백의 어머님이 살던 서울 술내골 충신동 방아다리 집의 토담을 배경으로 그렸다.

대문앞에 써있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 이른 봄임을 실감케 하고 있다.

햇볕이 좋은 마당에서 어린이들이 토끼와 한가롭게 놀고 있다.

이 그림의 정경들이 어쩌면 요즘 날씨와 많이 닮아 있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 아이의 모습에서는 아직 쌀쌀한 날씨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아이를 업고 있는 소녀는 버선을 신지 않았고 등에 업혀있는 아이는 한여름 의상이다.

사실묘사적 표현 방법으론 잘 맞지 않는다.

박 화백이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그렸는지 궁금하다.

전쟁 직후의 어렵고 가난한 삶을 희망적으로 풀어내려고 짐짓 이렇게 설정한 게 아닐까.

다소 무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대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요즘 날씨와 경제 사정 때문에 "봄이 왔어도 봄같지 않다(春來不似春)"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그림으로 여유를 찾으라고 권해 본다.

박 화백의 그림에서 자주 만나는 ''한가로움''은 모든 세상사를 조용히 바라보려는 그의 정신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일은 어떤 작품보다도 정돈된 구도와 짜임새를 갖췄다.

배경에 담장을 그려 넣고 오른쪽 하단에 그림자를 그려 전체 화면을 사각형의 무대로 설정했다.

그 안에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토끼를 바라보고 있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화면안에 머무르게 한다.

박 화백은 1936년에 경기중학을 마치고,1942년에 제국미술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1949년 경기중학 미술교사로 부임,1961년 서울 교대 교수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모교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경기중학에서 박 화백이 길러낸 작가는 최경한 최만린 조영제 한용진 김종학 이만익 조명형 김남진 등이다.

김태수 박명흠 우규승 같은 유명한 건축가도 가르쳤다.

이들은 지난해 경기중 개교 1백주년 기념으로 전시회를 열어 경기의 그림실력을 자랑했다.

박 화백은 경기 미술반 학생들이 대학진로를 놓고 집안의 반대에 부닥칠 때마다 "야,너희들이 미술대를 졸업하고 화가가 될 때 쯤이면 자동차타고 비행기타고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고 미술대 진학을 부추겼다.

박 화백은 인정이 넘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부산 피란 시절,밥을 얻으러 온 아홉살짜리 소녀를 환도 때 데리고 와서 고이 길러 시집까지 보내 줬다.

또 그가 약주에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올 때면 길가의 풀빵파는 장수가 가여워 늘 떨이로 풀빵을 샀다는 이야기는 요즘도 제자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월간 아트인 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