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도전과 신념의 화신이었다.

고인은 창조적 도전정신과 ''하면 된다''는 불굴의 신념으로 세계 경제계에서 기적으로 불리는 수많은 신화를 창조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들을 일궈내기까지 고인은 온갖 시련에 굴하지 않고 승부사적 기질로 맞서 극복했다.

고인의 삶은 쉼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인생 좌우명처럼 도전과 극복의 역정이었다.

고인의 도전은 원대한 꿈을 안고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면서 시작된다.

네차례의 가출끝에 고향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조그만 산골마을을 벗어난게 도전인생의 출발이었다.

19세때 쌀가게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4년 뒤 가게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정상 도전의 길에 들어선다.

자동차 수리업과 소규모 건설업을 통해 경영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고인은 이후 역사에 남을 대역사에 연이어 도전하게 된다.

고인의 도전에는 항상 태산도 움직일 듯한 굳건한 신념이 동반했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은 고인이 주저함없이 거대한 역사에 도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당시 세계인들의 경탄을 자아낸 소양강다목적댐(1976), 경부고속도로(1970), 원자력발전소(1970), 울산현대조선소(1973) 건설사업 등은 고인의 신념에 찬 도전이 빚어낸 미증유의 역사로 꼽힌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고인의 도전정신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공사(1976)에서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 세계의 주목을 끌어냈다.

신화로까지 불리는 이 대역사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무모함을 지적하는 가운데 고인 특유의 추진력과 돌파력으로 이뤄낸 업적들이다.

그렇다고 고인의 도전과 신념이 무지막지한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창의성이 신념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 당시 고인은 누구도 생각못한 바지선 선단을 동원한 대양수송작전을 감행했다.

이 기상천외한 도전에 세계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산 간척사업 당시 폐유조선을 동원한 물막이 공사는 고인의 창의적 도전정신의 백미로 꼽힌다.

이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고인의 창의적 도전은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까지 불꽃을 태웠다.

98년 전세계에 중계된 ''소떼 방북'' 장면은 아직까지 한 편의 드라마로 세계인의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유일하게 실패를 안겨준 92년 대통령선거 패배를 딛고 일어선 열정의 도전이었기에 감동의 도는 더했다.

고인이 그토록 갈망하며 최후 도전을 시도했던 조국통일은 이제 유업으로 남았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