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도전과 신화] (下) '살아있는 峨山 정신' .. 부국論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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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峨山)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기업가 정신에 대해 "기업은 이익이 우선이긴 하지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는 정신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산은 이같은 기업관을 바탕으로 성실과 신용, ''하면 된다''는 신념, 도전과 모험, 근검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아산은 생전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돈 빌릴 데가 없으니 돈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때마다 "당신은 자본이 없는게 아니라 신용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돈을 빌려줘도 된다는 확신이 들 만한 신용을 쌓아 놓지 못했기 때문에 자금 용통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신용만 얻어 놓으면 돈은 어디든지 있습니다"라고 충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신용''을 기업인이 갖춰야 할 으뜸 덕목으로 꼽았고 일생을 통해 이를 지키며 살았다.
한국전쟁 말미에 수주한 고령교 복구사업 이행과정은 정 명예회장의 신용 준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이다.
전후의 극심한 인플레로 계약액의 1.5배에 달하는 적자를 떠안아야 했을 때 측근들이 나서 중도포기를 권유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기업인은 주판알을 덮고 일할 때도 있다. 사업가는 신용이 제일인데 신용을 잃으면 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는 끝낸다"며 밀어부쳤다.
아산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공사를 완료한 결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용과 공신력을 쌓았다.
현대건설은 고령교에서 보인 신용이 높이 평가돼 전후 복구사업에서 대형 공사를 연속 수주, 두각을 나타내는 계기가 됐다.
아산은 구두 한 켤레로 20년을 버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며 근검 정신을 강조했다.
아산은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도 "나는 아직도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로 성실이 몸에 배어 있었다.
아산은 또 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원래 선량한 민족이며 우수한 민족이다"라고 주위 사람들을 일깨워 주려 노력했다.
아산의 ''할 수 있다''는 신념은 당시 세계 최대 역사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건설과 황량한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대형 선박을 건조한 현대조선소 ''신화''를 통해 구현됐다.
아산의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아산은 틈만 나면 "한국기업과 한국경제는 근면하고 우수한 국민들의 노력에 의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고 자본이나 자원, 기술은 그 다음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기업의 30분의 1, 미국 기업의 1백분의 1도 안되는 우리 기업의 규모는 세계 시장에서는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은 커질수록 좋고 그것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부국론(富國論)은 아산의 소신이었다.
지난 77년 현대건설 소유 주식의 50%를 과감히 출자해 설립한 ''아산재단''은 아산이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한 노력의 산물이다.
당시 아산은 "우리나라에는 주식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나는 현대건설의 주식 50%를 재단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는 인도주의 정신의 발현이었다.
한국경제 개발연대의 마지막 산 증인, 근대산업화의 선구자, 경제계의 거목, 이 시대의 마지막 거인으로 불리는 아산은 자신이 추구해 왔던 ''아산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해 보이고 눈을 감았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
아산은 이같은 기업관을 바탕으로 성실과 신용, ''하면 된다''는 신념, 도전과 모험, 근검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아산은 생전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돈 빌릴 데가 없으니 돈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때마다 "당신은 자본이 없는게 아니라 신용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돈을 빌려줘도 된다는 확신이 들 만한 신용을 쌓아 놓지 못했기 때문에 자금 용통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신용만 얻어 놓으면 돈은 어디든지 있습니다"라고 충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신용''을 기업인이 갖춰야 할 으뜸 덕목으로 꼽았고 일생을 통해 이를 지키며 살았다.
한국전쟁 말미에 수주한 고령교 복구사업 이행과정은 정 명예회장의 신용 준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이다.
전후의 극심한 인플레로 계약액의 1.5배에 달하는 적자를 떠안아야 했을 때 측근들이 나서 중도포기를 권유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기업인은 주판알을 덮고 일할 때도 있다. 사업가는 신용이 제일인데 신용을 잃으면 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는 끝낸다"며 밀어부쳤다.
아산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공사를 완료한 결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용과 공신력을 쌓았다.
현대건설은 고령교에서 보인 신용이 높이 평가돼 전후 복구사업에서 대형 공사를 연속 수주, 두각을 나타내는 계기가 됐다.
아산은 구두 한 켤레로 20년을 버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며 근검 정신을 강조했다.
아산은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도 "나는 아직도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로 성실이 몸에 배어 있었다.
아산은 또 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원래 선량한 민족이며 우수한 민족이다"라고 주위 사람들을 일깨워 주려 노력했다.
아산의 ''할 수 있다''는 신념은 당시 세계 최대 역사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건설과 황량한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대형 선박을 건조한 현대조선소 ''신화''를 통해 구현됐다.
아산의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아산은 틈만 나면 "한국기업과 한국경제는 근면하고 우수한 국민들의 노력에 의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고 자본이나 자원, 기술은 그 다음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기업의 30분의 1, 미국 기업의 1백분의 1도 안되는 우리 기업의 규모는 세계 시장에서는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은 커질수록 좋고 그것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부국론(富國論)은 아산의 소신이었다.
지난 77년 현대건설 소유 주식의 50%를 과감히 출자해 설립한 ''아산재단''은 아산이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한 노력의 산물이다.
당시 아산은 "우리나라에는 주식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나는 현대건설의 주식 50%를 재단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는 인도주의 정신의 발현이었다.
한국경제 개발연대의 마지막 산 증인, 근대산업화의 선구자, 경제계의 거목, 이 시대의 마지막 거인으로 불리는 아산은 자신이 추구해 왔던 ''아산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해 보이고 눈을 감았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