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용범(38)씨가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2권짜리 장편소설 "열 한번째 사과나무"(생각의 나무)를 내놨다.

지난 92년에 펴낸 장편 "얼음꽃"이래 9년만의 신작이다.

이씨가 등단한 후 천착했던 집단의 권력과 사회적 계급문제에서 벗어나서 쓴 첫 연애소설이다.

이씨는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랑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창작동기를 말했다.

이 작품은 디지털시대의 부박한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전통적인 순애보다.

나(지훈)와 상은간의 20여년간에 걸친 "엇갈린 인연"을 뼈대로 삼고 주변인물들과의 관계,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 등을 살로 엮어냈다.

작중화자인 ''나''는 16세 되던 해 봄 ''산수유가 꽃망울을 떠뜨릴 때 자전거 바퀴에 감겨 굴러오는 눈부신 햇살''속에서 상은과 처음 대면한다.

순간 그녀는 내 삶의 한 부분에 옹이처럼 박혀버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남은 ''미로찾기 게임''이었다.

너무 이른 만남은 이별을 예고했다.

''나''는 죽음과 영혼사이를 방황하던 이십대를 거쳐 ''세상과 교활하게 살을 섞던'' 서른살을 훨씬 지난 뒤에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한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회한을 안은 채.

작품은 성장소설의 울타리안에 있지만 주인공의 연정은 세월을 무색케 할 만큼 초지일관이다.

작가는 사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이야기속에는 불변의 순정을 드러내는 장치들이 여럿 들어 있다.

어느 식목일날 11번째 사과나무밑에 둘이 함께 묻은 편지,상은이 삶의 끝자락에서 택하는 은목걸이와 연보랏빛 스웨터 등.

은목걸이는 ''내''가 준 선물이고 연보랏빛 스웨터는 ''나''와의 첫 만남 때 입었던 옷이다.

줄거리는 다소 고답적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한국농촌의 풍경이 세련된 문체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80년대 대학가의 우울했던 초상도 흥미를 배가시킨다.

그러나 작가는 전작과 달리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는 않는다.

운동권과 시위,도피와 수감 등의 사건들은 등장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뿐이다.

주인공들의 성격묘사도 자기자리를 확보했다.

''나''의 우유부단함과 상은의 유년기 상처는 방황의 길로 인도하지만 그들의 강한 자의식은 순정을 지켜내는 디딤돌이 된다.

이씨는 "대중성을 갖췄으면서도 고급독자가 좋아하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1985년 ''문예중앙'' 신인소설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뒤 창작집 ''그 겨울의 일지'' 등 세권의 소설을 냈다.

이후 ''밥벌이''를 위해 오랜기간 문단을 떠났다가 3년 전에 전업작가로 되돌아왔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