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있는 한 선배가 메일로 이야기를 보내주었다.

그 선배는 한국 친구와 둘이서 퍼블릭골프장에 갔다가 일본인 관광객 두 명과 함께 라운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파와 보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네 사람은 비슷한 실력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홀이 진행돼 가면서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팽팽한 스코어 탓인지,일본인에 대한 습관적 경쟁심인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의 티샷이 더 길게 나가면 한치라도 더 멀리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고,그들이 퍼팅을 놓칠라치면 서로 눈웃음을 주고 받고….

그렇게 감정이 고조되며 9홀쯤 되자 분위기는 마치 국가대항전격인 ''라이더컵''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선배팀은 죽기 살기로 이겨야겠다는 생각뿐이어서 자신들이 장타를 날리면 ''구웃샷!''하며 소리를 지르고 그린에 올라서면 퍼팅라인도 서로 봐주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갑자기 깨지기 시작했단다.

일본인 중 한 사람이 턱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날의 라이더컵은 선배조가 대승을 거두며 끝났고….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일본인들이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단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한때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갈 정도로 쟁쟁한 실력이라고 했다.

무너진 한 사나이가 대회에 나갔던 실력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핸디캡이 얼마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한다.

"예전엔 비슷했는데 제가 병 때문에 이젠 잘 못쳐요"

선배조는 그제서야 후반에 갑자기 무너진 것이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친구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나이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기 전에 오랜 소원이던 골프여행을,한 게임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함께 떠나온 것이다.

순간 선배는 좀 더 다정하게 멀리건도 주고 기브퍼팅도 줄 것을 하는 회한에 휩싸였다고 한다.

선배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곁들였다.

"철이 든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쌓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골프도 마찬가지지요"

이 편지를 읽고 선배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 일본인은 인심 후한 골프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골프에는 샷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moon@golfsky.com 골프스카이닷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