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계열학부 학부장 >

사채(私債)를 얻어 쓴 서민들의 고통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바 그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다.

얼마전 TV를 통해 방영된 연리 3백60%의 고리(高利)와 폭력위협에 시달리는 채무자의 피해사례는 충격적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에 1천4백여 대금업자가 간판을 걸고 70∼80%에 이르는 고금리로 영업하고 있는데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3천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전국적 지점망을 갖고 있다.

또 상당한 규모의 일본계 자금도 유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고객은 2백4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신용불량자''들이다.

고금리문제는 제도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장사로 알려진 ''신용카드''가 대표적인 예다.

신용카드 사용의 60%가 집중되어 작년 한해 1백34조원이 공급된 현금서비스의 경우 수수료율은 연 24%를 초과하며 연체금리는 28%가 넘는다.

공정위는 신용카드업계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하고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으나, 업계가 이를 시정했다는 보도는 아직 없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세전 5%선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다.

최근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사채금리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부활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대통령이 고금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정부당국으로서는 환란 당시 IMF의 권고에 따라 1998년 1월 단행했던 이자제한법폐지는 합헌이라는 올초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부활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이자제한법을 공동 입법청원했다.

그러나 법률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자제한법의 부활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해다.

이자제한법이 폐지되기 전에도 연 1백%가 넘는 고리대금업은 성행했다.

현재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채를 포함, 고금리문제는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사채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오랜 세월 정부가 금융자원의 배분에 깊이 관여해 왔으며,이 과정에서 일선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능력에 장애가 온 것에 근인(根因)이 있다.

음식점 오락실 미용실 등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업소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던, 이른바 여신금지대상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물론 새마을금고 신협 상호금융 신용금고 등과 같이 서민을 상대로 한 금융기관이 있으나,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같은 현상은 무엇보다도 경제한파가 주고객인 서민층에 가중되었다는데 그 배경이 있다.

결국 사채와 고금리로부터 고통을 받는 서민층은 실물과 금융 모두로부터 소외당하는 셈이다.

서민금융생활의 피폐를 막기 위해서는 서민을 위한 제도금융의 활성화가 이뤄져야 하지, 이자제한법을 부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역설적일지 모르나 법정 금리상한선을 낮출수록 고통받는 이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서민금융기관의 취약한 여건을 감안할 때 서민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대안으로서 소비자금융을 공급하는 신용카드업무를 자격요건을 갖춘 서민금융기관에도 부여하고, 여신전문금융기관의 자본금 한도를 낮추어 진입자유화를 유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조치로 서민금융기관을 활성화하고 경쟁을 유도해 사채를 이용하는 서민층을 상당수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20년 전 일본이 했던 것처럼 대금업을 전면 제도화하는 방안이다.

물론 자금출처 등 세무조사를 회피하려는 전주(錢主)와 여전히 사채를 마다하지 않는 수요자가 있는 한 대금업을 양성화한다고 해서 사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당은 또다시 신용불량자를 사면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미봉책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신용불량자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사면조치는 신용불량자들간에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문제를 초래한다.

kimks@yurim.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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