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확실히 회생이 가능한지 현대측의 설명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29일 현대건설 지원을 위한 채권단회의가 열린 은행회관 14층 회의실.조용하던 분위기는 한 채권금융회사 대표의 격앙된 목소리로 순간 깨졌다.

묵묵히 지원자금 규모가 적힌 회의자료를 검토하던 다른 금융회사 대표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회의를 주재하던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필요하면 현대측 재무담당 어드바이저인 아더 D 리틀 관계자를 부르겠다"며 다급히 전화번호를 찾았다.

3조원이 넘는 자금지원을 결의하는 중요성에 비해 채권단회의의 사전 준비는 이처럼 어설펐다.

미흡한 준비는 어쩌면 결론이 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정부는 회의 전날 저녁에 현대건설 채권액의 75%를 차지하는 주요 채권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지원방안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지난 28일 오후7시 금융감독원은 외환 등 9개 은행의 행장을 여의도 63빌딩 가버너스 챔버클럽으로 긴급 소집했다.

이 자리에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과 강기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등이 참석했다.

강 부원장보는 "은행장들에게 잘 논의해 보라고만 했을 뿐 (처리방안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믿는 금융계 관계자는 없다.

회의 전날 주요 채권은행장을 부른 것 자체가 이날 채권단회의 방침을 결정지어 버린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의안이 모두 확정된 속에서 ''거수기'' 역할을 하러 온 금융회사 대표들이 불만을 가진 것도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당초 회의석상에 마련돼 있던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의 명패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현대건설이 비록 자본 전액잠식 상태라고 밝혀졌지만 청산이나 법정관리로 갈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은 채권단도 인정한다.

3조원의 거액을 지원키로 결의한 것도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현대건설 해법과정에서 드러난 정부당국의 모습은 여전히 시장원리와 어긋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준현 금융부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