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1일 공정거래법 규정에 따라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정해 왔다.

재계의 폐지 또는 근본적인 개편 요구에도 불구하고,올해도 별다른 제도 보완없이 1일 또 발표했다.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소속회사들은 계열회사간 상호출자 금지, 신규 채무보증 금지, 총액출자제한,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그리고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제한 등 갖가지 규제를 받게 된다.

경제력 집중완화라는 30대 그룹 지정제도의 기본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 제도가 기업경영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인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환경이 크게 달라졌고,국내외 경제환경도 현저하게 변화된 점 등을 감안하면 이젠 이 제도의 폐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30대 그룹에 대해 적용하는 갖가지 규제는 기본적으로 주주와 채권자, 또는 기업과 금융기관 등 이해당사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가 법으로 직접 규제하고 나섬으로써 시장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컨대 지급보증이나 타법인 출자 등은 금융건전성 규제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법으로 제한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들의 경영감시기능 강화, 그리고 회계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광범하게 강구된 마당에 여기에 더해 경영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갖가지 의무를 계속 부여하겠다는 것은 기업의 발목을 묶어버리는 지나친 규제가 분명하다.

이들 30대 그룹에 대한 규제는 공정거래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세법 또는 외국환거래법 등 수많은 법률에서 추가적인 규제가 가해지고 있어 기업들에 주는 부담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또 국내기업들에 대한 그같은 족쇄는 외국기업들에 비해 역차별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세계시장은 물론 국내시장에서 조차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엔 이같은 규제가 있을리 없고, 따라서 그들에게 국내시장을 손쉽게 내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기업의 발목을 묶어 놓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방법은 없다.

제도의 존속이 불가피하다면 30대 그룹을 지정할 것이 아니라 5대 그룹 정도로 축소,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자산총액이 2조원에 불과한 하위그룹과 70조원에 육박하는 상위그룹에 대해 동일한 규제를 부과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