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의 블랙먼데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증시대폭락''의 악몽으로 남아 있다.

필자는 당시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증시대폭락이 아니라 다음날 학교신문의 분석기사였다.

당시 학교신문에는 증시폭락으로 인해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 기부금이나 연구비, 그리고 학생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얼마나 감소할 것인가 하는 분석기사를 싣고 있었다.

주가폭락이라는 현상이 실제로 개인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통계적 기반이 놀라웠다.

최근 건강보험 적자 문제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관련 장관이 인책당하고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상당폭의 개각이 이루어졌다.

개각이 있을 때마다 항상 능력 있는 참신한 인사를 등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하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당국자에게 거는 기대는 대부분 공염불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정책이 효과적으로 수립,집행되려면 담당 부서에서 정책수립의 목표와 결과가 사전적으로 분석되고 평가 부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사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또한 관련 연구자나 전문가들의 이론적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과 연구, 평가에 필수 불가결한 기본 요소인 한국의 통계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모든 정책당국자들이 정보통신(IT) 산업의 중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IT산업과 생산성의 관계는 희미한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이들간의 관계분석을 위해 필요한 IT자본스톡이나 비(非)IT자본스톡에 대한 세분화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득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작년에는 소득분배 3개년 계획을 통해 선진국수준의 소득분배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제의 한국현실은 소득분배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소득분배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소득분배를 개선하겠다고 하니 황당하기조차 하다.

부정확한 소득자료에 근거해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료가 책정되고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선정되고 있다.

정부는 해마다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실업자를 위한 재취업 훈련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실업자 재취업교육이 실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통계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수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교육이라는 것을 시키고 있지만, 과연 이 교육을 받으면 취업이 더 잘되는 것인지, 취업 이후에는 더욱 좋은 성과를 내는지 분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데이터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참신한 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현실에 바탕을 둔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의 생산이 절대적이다.

많은 정책입안자들이 말로는 통계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통계에 대한 예산과 인력배분에는 매우 인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정부의 통계 담당자들은 통계청이나 노동통계 관련부서, 그리고 한국은행의 통계관련부서 등에 종사하는 인력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일의 양이나 중요성에 비해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주어진 예산에서 통계의 질을 제고하려는 담당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원이나 예산 수준으로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는 통계를 적시에 정확하게 생산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건강보험문제로 나라가 시끄럽고 집권후반기 개혁완성의 목소리도 요란하다.

그러나 건강보험문제도, 그리고 참다운 개혁도 기초 통계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보강과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확한 기초통계의 바탕없이 이루어지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흉내내기는 결국 한국이란 나라를 앞날을 볼 수 없는 블랙박스로 몰아 넣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shkang@cc.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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