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적으로 제작된 타제석기 마제석기 토기등 유물의 절대연대를 밝혀내는 일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과거에는 나무의 나이테로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과학적인 방사선탄소측정법 열발광측정법 등의 개발로 유물의 연대측정이 훨씬 수월해지고 정확도도 높아졌다.
그중 방사성탄소측정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근래 고고학계의 눈부신 학문적 개가는 이처럼 과학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일본에서는 요즘 구석시대 유적에 대한 재검증작업이 한창인 모양이다.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발굴한 전기 구석기시대 가미다카모리(上高森) 유적이 날조됐다는 사실이 지난해말 밝혀져 일본 고고학계의 신뢰성에 먹칠을 했다.
교과서까지 고쳤으니 나라망신이다.
60만~70만년전 전기 구석기유적이라고 자랑했던 것이 30만~40만년전의 후기 구석기유적으로 추락한 꼴이다.
지난달에는 62년 발굴했던 히지리다케(聖嶽) 동굴유적이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날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발굴책임자였던 가가와 미스오(賀川光夫)가 자살하는 소동이 있었다.
후지무라는 날조한 것을 본인도 인정했지만 가가와는 ''날조''라기보다 당시 일본 고고학계 수준의 한계인 연대측정 잘못에 따른 ''판단착오''였다는 것이 현지 여론이다.
''발굴이란 누가 언제 하더라도 그 유적이 가지고 있는 문화 역사정보의 일부만을 얻어내고 흔히 잘못된 판단을 진실처럼 퍼뜨리는 일종의 유적파괴 행위다.
1백년 뒤에 발굴한다면 진보된 연구나 기술로 배는 더 정보를 얻어낼 것''이라던 작고한 고고학자 김원룡의 솔직한 고백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학자는 매명적(賣名的) 현학(衒學)이나 국수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뒤늦은 60년대부터 구석기유적 발굴을 시작했다.
지금 석장리 전곡리 등 여러 곳인 우리의 구석기유적에는 날조란 있을 수 없을테지만 혹 판단착오는 없는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