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세계 미술사조에 중요한 획을 그은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1928∼1987) 전기가 유럽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저명 미술 비평가이자 르 피가로 미술전문 대기자 미셀 누리자니가 쓴 ''앤디 워홀''(플라마리옹출판사)이 그것.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와 1달러 지폐,코카콜라 병 그림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와 대량생산·소비사회의 속성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거장.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이 됐지만 그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만지고 있다.

지난 98년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오렌지 마릴린''(64년작)은 팝아티스트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가인 1천7백3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60년대 예술계에 새로운 메시지를 제시한 팝아트를 재조명하는 종합전이 열리고 있다.

저자 누리자니는 앤디 워홀의 폭발적인 인기와 관련해 "10년전만 해도 젊은 예술가의 모델은 마르셀 뒤샹이었지만 이젠 앤디 워홀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1928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난한 슬로바키아 이민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뉴욕에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앤디 워홀은 대표적인 ''아메리칸 드림 키드''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누가 물어도 자신의 가장 큰 관심은 돈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막 진출해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젊은 시절,화상 카스텔리가 장차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할리우드에 수영장을 갖춘 저택을 갖고 영국 여왕만큼 유명해지고 싶다"고 답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팝아트 거장의 예술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앤디 워홀의 어린 시절 콤플렉스와 성장한 후의 이중성까지도 잘 보여줬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이번에 조명된 그의 천주교 신자로서의 신앙심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생전에 마약과 동성애 관련 스캔들로 퇴폐적 무신론자처럼 보였던 그였기에 더욱 놀랍다.

그는 평소의 악마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매주 일요일 렉싱톤 애브뉴의 세인트 빈센트 페러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또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성당에 나가 남몰래 빈민구제 자선봉사를 하고 상당한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앤디 워홀은 60∼80년대 상류사회 사람들을 패션 빅팀(Fashion Victim)으로 만들었다.

그의 전시회는 항상 리치 앤 페이머스(Rich & Famous)들로 북적댔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으면 최신 유행에 뒤진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키 오나시스를 비롯해 이란 왕실 가족,유명 정치인들은 그에게 실크 스크린 판화법을 이용한 초상화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세계적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붉은 입술과 날름거리는 혀'' 역시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디자인과 광고,음악,잡지 발행,미술 등 앤디 워홀이 손대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

저자는 "앤디 워홀이 여러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는 점에서 르네상스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세기 미술에 미친 영향력과 천재성에 있어서는 피카소와 대등한 것으로 평가한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worldonlin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