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leeng@ftc.go.kr >

관광지로 유명한 스위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레만호수(Lac Leman)''다.

총 길이가 72㎞나 되는 유럽 최대의 호수로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주변의 낮은 구릉에서 재배중인 키 작은 포도나무의 녹색잎과 안개가 드리워진 레만 호반이 어우러질 땐 흡사 바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지금은 이토록 아름다운 레만호수지만 한 차례 심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1950년대 합성세제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호수의 오염이 극에 달해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고기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가 된 것이다.

물고기가 다시 호수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기 위해 스위스와 프랑스는 20년에 걸쳐 약 1백20개의 폐수처리장을 건설해야만 했다.

그때의 가르침을 잊지 못해서일까.

스위스인들의 레만호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각별하다.

비단 수질뿐만 아니라 호수의 경관 하나하나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제네바를 처음 찾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의아한 생각을 갖게 된다.

거대한 레만호에 놓여진 다리라곤 ''몽블랑다리(Pont Du Mont Blanc)''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처럼 레만호는 제네바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20개가 훨씬 넘는 다리가 놓여진 서울과 달리 제네바에는 몽블랑다리 하나만이 도시 양쪽을 연결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교통체증이 매우 심하고 주민들의 불편도 크다.

그러나 주민들은 호수의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기꺼이 삶의 불편을 감수했다.

추가로 호수 위에 다리를 건설하려는 제네바 주정부의 노력은 주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처럼 스위스가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할 수 있는 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작은 편리에 급급하기보다는 더 멀리 내다보고 참을 줄 아는 성숙한 국민이야말로 든든한 자연의 후원자요,동반자다.

아울러 이러한 국민의 뜻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스위스 특유의 직접민주주의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스위스의 아름다움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인 것이다.

스위스 못지않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가진 우리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후대에 어떤 작품을 물려줄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남겨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