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움직인 책] '논어' ..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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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규장각 관장>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나이가 되도록 세상일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 곧 난관에 처하게 됐다.
아이를 엄하고 절도있게 키워야 하는지 아니면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원하는 대로 욕망을 충족시켜 줘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당시에는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기가 안 죽고 활동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은 아닌 듯해 내가 교육받은 대로 엄하게 키우면서도 문득 ''과연 내가 잘 키우고 있나'' 회의가 들곤했다.
어쩌다 집에 다니러 오신 시어머니께서 "너희 집 애들은 참 점잖구나. 화장대 위가 어쩌면 이렇게 잘 정돈돼 있냐? 아무개네 집에 가니 문풍지가 성한 문짝이 하나도 없던데 말이야"하실 때면 칭찬으로 알고 역시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하다가도 ''혹시 아이들의 기를 너무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런 기우를 말끔히 씻어버리게 된 것은 뒤늦게 ''논어''를 원전으로 읽고 나서였다.
''己所不慾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이라는 구절에 가서는 손뼉을 쳤다.
어려서 어머니께서 늘 "네가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고 네가 갖고 싶지 않은 물건은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던 가르침의 원형을 발견한 기쁨은 컸다.
그야말로 절제의 가르침이었다.
이보다 더한 휴머니즘이 어디 있을까 싶었고 당시 사회의 대세가 돼가던 개인주의 정신과도 잘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꼭꼭 씹듯이 음미하면서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의 원형을 확인해 가는 과정은 감격 그 자체였다.
그 이후 나는 주저없이 논어를 아이들 교육의 기준으로 채택했음은 물론이고 내 인생의 지침서로 삼게 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나이가 되도록 세상일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 곧 난관에 처하게 됐다.
아이를 엄하고 절도있게 키워야 하는지 아니면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원하는 대로 욕망을 충족시켜 줘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당시에는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기가 안 죽고 활동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은 아닌 듯해 내가 교육받은 대로 엄하게 키우면서도 문득 ''과연 내가 잘 키우고 있나'' 회의가 들곤했다.
어쩌다 집에 다니러 오신 시어머니께서 "너희 집 애들은 참 점잖구나. 화장대 위가 어쩌면 이렇게 잘 정돈돼 있냐? 아무개네 집에 가니 문풍지가 성한 문짝이 하나도 없던데 말이야"하실 때면 칭찬으로 알고 역시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하다가도 ''혹시 아이들의 기를 너무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런 기우를 말끔히 씻어버리게 된 것은 뒤늦게 ''논어''를 원전으로 읽고 나서였다.
''己所不慾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이라는 구절에 가서는 손뼉을 쳤다.
어려서 어머니께서 늘 "네가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고 네가 갖고 싶지 않은 물건은 남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던 가르침의 원형을 발견한 기쁨은 컸다.
그야말로 절제의 가르침이었다.
이보다 더한 휴머니즘이 어디 있을까 싶었고 당시 사회의 대세가 돼가던 개인주의 정신과도 잘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꼭꼭 씹듯이 음미하면서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의 원형을 확인해 가는 과정은 감격 그 자체였다.
그 이후 나는 주저없이 논어를 아이들 교육의 기준으로 채택했음은 물론이고 내 인생의 지침서로 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