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날아든 반도체경기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종합주가지수를 28개월중 최저로 돌려놓았다.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 환율의 사흘 연속 하향조정을 유도하면서 금리도 내림세로 이끌었지만 속락을 저지하는데 그쳤다.

정부는 또 경제장관 간담회를 통해 이번주 내에 연기금 8,000억원을 증시에 투입하고 민영 연기금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세를 면제하는 등 증시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외국인의 대거 매도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장관계자들은 증시대책이 새로운 내용도 실효성도 없어 오히려 불안감만 키웠다고 평가했다.

◆ 반도체 경기, 얼마나 나빠질까 = 리만 브러더스의 댄 나일즈는 9일 올해 반도체 매출이 전년보다 최고 20%까지 줄어들 것이라며 인텔을 비롯한 주요 업체 실적전망을 하향조정했다. 올해 반도체 매출 성장률이 지난 85년의 마이너스 17%보다 더 감소, 사상 최악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살러먼 스미스 바니의 조나단 조셉도 인텔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실적 전망치를 하향하면서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나일즈는 이날 보고서에서 반도체 수요감소는 닷컴기업의 붕괴와 경기둔화에 기인하며 지난해 4/4분기보다 올 1/4분기 재고수준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도체산업이 향후 6∼9개월 안에 바닥을 칠 것으로 전망, 반도체 부진이 3/4분기를 넘겨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은 비록 반도체 매출은 미약하지만 플러스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반박 자료를 내놓았다. 올해 반도체 경기 지표는 전년대비 0∼5% 내외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삼성증권도 반도체 경기가 올해 2/4∼3/4분기까지 하향세를 지속, 내년 3/4분기에 가서야 기조적 상승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해 당분간 반도체 주가가 회복되기 힘들 것임을 시사했다.

반도체 경기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이날 CSFB증권은 삼성전자의 올해 순익 전망치를 기존 4.6조원에서 3.6조원으로 21% 낮췄다. 또 내년 순익전망치는 6.2조원에서 5.2조원으로 17% 낮췄다.

신영증권의 김인수 선임연구원은 나스닥시장에서 미 반도체주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확산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의 매도공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선도주인 삼성전자의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종합지수는 단기적으로 470~480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 종합지수 2년 4개월 전으로 뒷걸음 = 외국인은 10일 삼성전자를 797.5억원 어치 대거 순매도하며 지수급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3,500원, 1.89% 내려 18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가 밀리면서 현대전자와 아남반도체도 약세에 빠져들었다.

외국인은 거래소와 지수선물시장에서 각각 1,300억원 이상, 3,100계약 이상을 대거 순매도, 종합주가지수를 28개월중 최저로 내리밀었다. 종합주가지수는 6.25포인트, 1.26% 하락, 지난 98년 12월 5일 490.71이래 최저치인 491.21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장중 65선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거래소와 발맞춰 64선에서 하락 마감했다. 두 시장모두에서 거래대금이 1조원을 조금 넘어 전날에 이어 침체된 양상이 빚어졌다.

한편 삼성전자와 함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이날 외국인의 집중 매도공세를 받았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최근 주식교환 비율을 놓고 치열한 의견대립을 보이면서 합병이 차일피일 지체된 것이 빌미가 돼 이날 외국인으로부터 각각 330억원과 230억원의 순매도 공세를 받았다.

이번 주중으로 합병안이 타결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여하튼 합병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주가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증시대책, 불안감만 고조 = 정부는 이날 국민연금과 우체국보험기금 등 연기금 8,000억을 이번주 증시에 투입하고 이르면 5월부터 연기금의 주식투자에 대해 증권거래세를 면제하고 주식양도차익 법인세도 전액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증시관계자들은 정부가 오히려 시장 불안감만 높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최근 거듭되는 정부 시책이 새로운 내용이나 시장을 안정시킬 만 한 실효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은 불안감은 느낀다는 것이다.

대우증권의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정부대책이 지난해 12월부터 계속 발표되고 있으나 대동소이하다는 점이 문제"라며 "시장에서는 이같은 정부 행태가 더 이상 내놓을 자구책이 없는데서 비롯되는게 아니냐는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다시 뉴욕증시 = 시장관계자들은 11일에도 뉴욕증시, 특히 반도체주의 등락이 국내 증시의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팀장은 "이날 외국인의 매도공세는 향후 단기간에 그칠 만한 성격으로 볼수 없다"며 "외국인은 최근 나스닥의 폭락을 감안할 때 한국 시장에서 저가메리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게 시장을 떠나는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까지 주가 약세가 지속되면서 종합지수가 450선까지 밀릴 것으로 전망했다.

LG증권의 박준범연구원은 "이날 외국인의 선물매도는 다분히 투기적인 성향이 있지만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매도세는 시장 분위기를 침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 새벽 모토롤라의 실적발표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모토롤라의 영업적자폭이 예상치를 넘어서지 않을 경우 단기적으로 지수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토롤라는 10일 장 종료 후 실적을 발표하기 때문에 이날 증시에는 변동성을 키우는 쪽으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박연구원은 "그러나 당분간 나스닥시장의 불안을 감안할 때 미 증시가 안정될 때가지 보수적 입장에서 지수관련주 보다는 중저가형 개별종목 중심의 매매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한정진기자 jj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