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자금을 단기적으로 조달하고 있으나 하반기이후 중장기적으로 보면 큰 걱정입니다"

중견 대기업 D사의 P자금팀장은 11일 낮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19층 경제인클럽에서 열린 기업금융간담회에서 기업자금 실태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전경련은 최근 주가·환율·채권시장이 ''트리플 약세'' 현상을 보인데다 자금시장 양극화로 중견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이날 중견기업 자금담당자 위주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H,D,I,J,L,K사(신용등급 BB이하)등 10여개 업체의 자금담당자들은 한결같이 "3개월짜리 기업어음(CP)을 연장하면서 단기자금을 끌어쓰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며 "회사채를 인수하겠다는 금융기관이 나서지 않으면서 시중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중 67.3%가 하반기에 몰려있는데다 CBO(채권담보부 후순위채권)의 만기가 내년초에 대거 도래해 기업들이 일시에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아무리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라도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에선 어렵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날 회의의 분위기로 보아 올초만 해도 정부의 회사채 신속인수제 실시 등으로 다소 회복세를 보이던 기업자금사정이 급격히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제조업을 하는 I사의 K팀장은 "자금운용기관의 요구에 따라 단기자금만 끌어쓰다보니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매월 잔액기준 1천억∼3천억원의 유보금을 쌓아두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보금 보유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신용평가회사에서 쓸데없이 현금을 쌓아둔다며 회사신용등급을 떨어뜨릴 때마다 자금담당자로서 울화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H사의 J팀장은 "2개이상의 신용평가회사로부터 3개월마다 신용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유가증권 발행규정 때문에 분기마다 평가비용만 최고 1억6천만원이 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시중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심화되는 데 따라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며"신용평가 의무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이상으로 늘리고 정부가 중장기적인 자금불안심리를 해소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이날 회의에서 만기도래 회사채와 CBO 편입 회사채 간에 신용등급 불일치로 투기등급 이하의 신용을 가진 중견기업들이 자금회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정부에 대책을 건의키로 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