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른바 ''권력기관들''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국정 전반에 관한 정보를 챙겨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는 신임 국정원장의 취임사, ''세풍(稅風)''에 이어 역시 용두사미로 판결이 난 ''총풍(銃風)'' 사건, 언론사들에 대한 징세, 금융감독 공정거래 관련기관들의 개입 등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의 헌법 개정 문제에 더 관심이 가 있는 것 같다.

각 정파들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논쟁의 초점은 ''대통령의 임기''와 ''부통령제 신설'' 등 권력구조 변경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권력구조에 관련된 헌법 개정이 쉽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헌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정파와 반대하려는 정파가 모두 헌법개정으로 인한 차기 대선에서의 정치적 손익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초래될 정파간 이해득실이 손금 들여다 보듯 빤하게 예측되는 상황하에서(과거처럼 정치공작에 의하지 않는 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더욱이 지금처럼 대선을 불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같은 헌법개정에 비하면, 지금처럼 권력기관들에 대한 개혁입법을 추진하기가 좋은 시기도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우리나라가 놀라울 만큼 민주화가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간단한 예로 1980년대 후반까지의 대학교정과 90년대 초 이후의 대학교정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기관들이 건재하고 있다.

물론 이 국가기구들의 공권력 행사는 매우 필요한 것이다.

안보 징세 금융 및 공정거래 질서 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가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국가기구들이 공권력을 선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지에 있다.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처럼 공권력 행사도 선택적으로 함으로써 행정적 효율성을 기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특정의 목적을 위해 ''표적 수사'' ''표적 사찰'' ''표적 추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문제다.

의도적이고 선별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그만큼 권력기구들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행동할 여지도 넓어진다.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자들이라는 현실주의적 가정에 입각한 이른바 ''합리적 선택이론''에 의하면, 공정한 입법은 ''무지(無知)''의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즉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 즉 무지의 상태에 처해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입법안에 동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있어서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차기 대권의 향방에 대해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모든 정파의 정치인들이 ''무지의 상태''에 처해 있는 셈이다.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합리적인'' 정치인들이라면 차기 정권의 엘리트들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구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개혁입법의 추진에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혹시 해당 공권력기관들이 자신들의 활동범위나 자유재량의 여지가 좁아지는 것으로 오해해 반대 입장에 설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기관 종사자들은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됨으로써 오히려 그들 입지가 더 견고해지고 또 업무상의 개인적 보람도 증대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공정선거에 의해 정치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일에 더하여 국가기구들의 공정한 공권력 행사 또한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성원이 뒷받침한다는 점이다.

ydj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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