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경제와 증시가 계속 침체돼 왔는 데도 달러화 가치는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종전의 경제이론에 비춰본다면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최근 미국 학계와 뉴욕 월가를 중심으로 ''달러화 거품론''이 제기된 데 이어 앞으로 이같은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미 증시의 최대재료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 달러화 가치는 고평가돼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내부조사자료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인플레 수준을 감안한 달러화 가치지수는 3월말 현재 109로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달러화 가치가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고평가돼 있음을 시사해 주는 분석이다.

FRB는 올들어 세차례에 걸쳐 금리인하를 단행했는 데도 1998년 9월말의 금리인하 이후와 같은 수출과 경제회복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달러화 고평가에서 찾고 있다.

엔.달러 환율의 경우도 올들어 미.일간 금리차가 줄어들고 있고 경상수지차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화 가치는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였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8.5% 상승했다.

◇ 적정 엔.달러, 원.달러 환율수준은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적정한지를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해당 국가의 인플레 수준을 감안한 구매력 평가설과 수출채산성 모델이 가장 많이 적용된다.

이들 방법으로 현재 엔.달러와 원.달러의 적정환율 수준을 추산해 보면 각각 1백15~1백20엔, 1천2백90~1천3백10원 정도다.

지난 주말 1백24엔대의 엔.달러와 1천3백20원대의 원.달러 환율 수준에 비해 달러화 가치가 고평가된 상태임을 나타낸다.

◇ 달러화 거품 붕괴의 가능성은 =현재 고평가된 달러화 가치가 적정 수준으로 돌아올 경우 미국 경제와 증시 침체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엔고가 무너지면서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를 불러왔고 1994년말 멕시코와 1997년 하반기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고평가된 자국통화 가치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외환 위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를 당한 예가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 국제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보유심리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지금처럼 국제 자금흐름의 약 80% 정도를 각종 펀드들이 차지하는 시대에서는 경제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자신들의 고객(개인투자자)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통화(safe-haven currency)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미 달러화는 세계 모든 통화 가운데 가장 안전한 통화로 여전히 선호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고평가된 달러화 가치의 거품이 붕괴돼 미국 경제와 증시의 추가 침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