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자기 편의를 위한 도구인 경우가 많다.

마음의 짐을 덜어 좀 더 ''편안하게'' 살고픈 욕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자기 인생을 파멸시킨 원수와 마주친다면….

작가 강준용(49)씨의 2권짜리 장편소설 ''별나라를 지나는 소풍''(책소리)은 진정한 용서의 대가를 통찰한 소설이다.

''스콜''(1993) ''천재의 울음''(1996) 이래 6년 만에 나온 강씨의 3번째 장편이다.

요즘 출간되는 소설들이 대부분 심리묘사에 치우쳐 있다면 이 작품은 현장묘사가 돋보이는 ''이야기로서의 소설''에 가깝다.

''별나라…''은 무자료거래의 음료덤핑사업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물들의 배신과 파멸 그리고 오랜 방황 끝의 화해를 담았다.

굴지의 음료업체 직원 석강윤은 ''도원 결의''를 맺은 의형제 강부달과 음료덤핑사업에 뛰어든다.

음료덤핑사업은 음료제조회사가 납품업자들에게 현금 대신 물품으로 결제하는 불법관행을 이용한 사업.

강윤과 부달은 음료회사로부터 물량을 빼돌려 지방 유통업자들에게 덤핑판매해 돈을 크게 번다.

하지만 친지들로부터 돈을 빌려 덤핑사업자금을 조달한 강윤은 경쟁덤핑업자의 물량공세와 부달의 배반이 겹치며 결국 몰락의 길을 걷는다.

가족을 잃고 친구 집의 다락방,삼류 여인숙,서울역,재활원 등을 전전하는 부랑자로 전락한다.

이때 강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사업실패보다 부달의 인간적 배신에 대한 분노감이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부달은 뒤늦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강윤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5년 간의 ''방황''이 필요했다.

작가는 책 제목에 방황 대신 ''소풍''이라는 말을 썼다.

방황은 귀환을 목표로 하지 않지만 주인공은 용서를 통해 인간 본성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강윤의 귀환길에는 창녀 지게꾼 벙어리 노인들의 삶 등이 이정표로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가족의 배반으로 나락에 떨어졌지만 그들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들이나 ''배반자''들이나 모두 ''헛 것''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는 깨달음에서다.

밤 하늘의 별도 수만년 전 빛의 허상에 불과한 것 처럼 인생은 어쩌면 허구의 세상을 지나는 걸음일런지도 모른다.

제목 ''별나라를 지나는 소풍''은 이런 함의를 담고 있다.

작품 속에는 요즘 넘쳐나는 실직자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유통업체의 덤핑거래와 탈세관행,시장과 여인숙 풍경 등도 생동감있게 담겨 있다.

작가는 강윤의 사업실패담과 부랑자생활 등 두개의 이야기를 따로 써 서로를 교직시키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우연성의 남발''에서도 벗어났다.

강씨는 "용서는 신(神)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이 진정한 용서를 하는데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이 따른다"고 말했다.

글=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