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금융시스템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바꿔야 하고, 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첫째, 획일적인 세계적 추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 한국이 처한 구체적 현실에 비추어 해외추세를 따르는 것이 타당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재론의 여지가 있다.

정부는 짝짓기를 서두르기보다 공개적 논의과정을 통해 은행산업의 경쟁적 발전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먼저 한국이 제조업분야에서 계속 성공하려면 기업금융의 안정적 자금줄인 은행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영미식을 좇아 자본시장 중심으로 신속하게 이행하기엔 제반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경영투명성 회계제도 등 증시 하부구조가 일천하다.

그렇다고 은행의 개혁을 방치하자는 뜻은 아니다.

단, 은행을 개혁하기 위해 은행이 담당해온 기업금융의 중요한 역할을 마땅한 대안없이 파기해서는 안된다.

다음으론 은행업의 효율적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형화가 은행의 경쟁력을 키워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키워지는 것이지, 합병을 유도해서 독점이윤을 짜내는 것이 경쟁력일 수 없다.

그러면 수익성만을 잣대로 은행업을 개편하면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에는 공익적 사명이 부여돼 있다.

그러므로 수익성을 위주로 하되 공익성을 배제하지 않는 형태로 은행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수익성과 공익성을 결합하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다.

종래의 관치금융도 공익성을 이유로 남용됐고, 어디까지가 관치금융이고 공익성인지 그 경계선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가피한 개입과 절대 근절해야 할 관치를 구분해야 한다.

유사시 국익을 전제로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피한 개입의 영역이다.

이로 인해 은행이 부실화된다면, 적정한 공식에 의해 부실보전이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대안은 내부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종업원이 경영에 참여하는 독일 네덜란드에서 부정부패형 관치시비가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또 은행규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은행의 공익성을 인정한다면 규제기준의 로컬화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어디까지나 국제업무의 비중이 높은 은행을 상대로 한 것이고, 사업의 구성이 다른 외국은행의 이익지표를 우리나라 은행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난센스다.

마지막으로 은행의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우리 주요 은행을 외국자본에 마구 넘길 수는 없다.

외자에 무엇을 어디까지 기대할 것인지 그 한계선을 설정해야 한다.

국민경제의 안정운행과 관련, 정부는 언제든지 주요 은행들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므로 정부보유지분을 포함해 내국자본 비중을 일정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외국자본이 모두 철수해도 무방한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은행업의 발전을 위해 외국은행과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국내은행을 대거 접수하는 방식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은행들엔 지점 형태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고, 이를 대폭 확대해 줌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다스려야 한다.

지점 방식으로 들어온 시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의 성공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 정도 규제의 틀도 수용하지 않는 외자에 대해 한국은 단호해야 한다.

국민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지키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저축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임을 감안해야 한다.

다시 말해 높은 국내 저축만으로도 높은 투자를 달성할 수 있는 나름대로 운신의 폭이 있다는 점을 살려야 한다.

따라서 금융개혁은 국내의 저축을 국내 기준에 입각해서 건실한 실물투자로 연결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ckl1022@lion.i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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