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과학의 날'과 4월19일..박성래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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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며칠사이에 ''4.19 혁명일''이 있고, 이어 ''과학의 날''이 온다.
그 사이에 낀 20일은 ''곡우''(穀雨)이기도 하다.
19일 20일 21일이 ''4.19 혁명일''-''곡우''-''과학의 날''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흘 모두 내게는 개인적으로도 관심많은 날들이다.
하지만 20일의 곡우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생각이 없다.
24절기의 하나로 지난 4월5일의 청명(淸明)과 5월5일의 입하(立夏) 사이에 든다.
한국인이라면 24절기를 알아두고 활용하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오늘 내가 생각해 보고 싶은 기념일은 ''4.19 혁명일''과 ''과학의 날''이다.
19일은 1960년 4월19일 학생들이 이승만(李承晩.1875∼1965)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궐기했던 날이다.
그런데 달력에는 4.19를 ''4.19 혁명일''이라 표기해 놓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혁명''이었던가 나는 새삼 의문스럽다.
어느 백과사전엔 이렇게 쓰여 있다.
"독립운동가로 국민의 추앙을 받으며 이 나라 초대 대통령이 됐던 이승만은 1960년 3월15일 여당과 정부가 전국적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해 대통령에 4선됐지만, 4.19 혁명으로 사임, 하와이에 망명해 있는 동안 사망하였다"
바로 이승만을 몰아내는 그날의 데모에 나도 한몫했다.
1960년 4월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경찰을 피해가며 종로 뒷골목을 달려 광화문에 모였었다.
그날의 데모는 유혈사태로 발전했고,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같은 대학을 다니던 내 친구 하나는 그날 이후 수유리에 잠들어 있기도 하다.
강의하다가 물어 보면 요즘 대학생의 상당수는 ''이승만''이란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
4.19 기념행사라며 많은 학생들이 마라톤을 하는 수는 있지만….
참으로 시간의 약발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승만의 이름조차 모르듯이, 나도 그 사이에 그날의 흥분과 분노를 잊어가고 있는 모양이니 말이다.
한편 4월21일을 ''과학의 날''로 해마다 기념하는 것을 보기가 나는 정말 짜증스럽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34년 4월19일에 이미 식민지 조선의 지식층이 총출동해 ''과학 데이''란 것을 만들어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과학의 날''은 1934년의 ''과학 데이'' 법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1967년 과학기술처의 간판을 달고 출범한 기념으로 이듬해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날을 만들 양이면, 그 보다 33년 전의 ''과학 데이''를 부활해 4월19일을 ''과학의 날''이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정도의 역사 의식조차 없는채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이란 것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1934년의 ''과학 데이''는 그후 몇년 계속됐고, 그 행사에는 당시 조선 지도층이 대거 참여해 일종의 독립운동처럼 그 행사를 치렀다.
과학발전 없이는 조선 민족의 장래가 어둡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몸부림이 강연회 영화상영 시내행진, 그리고 ''과학의 노래'' 등에 배어 있다.
지금이라도 과학의 날을 4월21일에서 4월19일로 옮기는게 옳다.
1968년 처음 ''과학의 날''을 정할 때는 과학사 연구자가 거의 없는 시절이어서, 일제시대에 이미 ''과학 데이''란 것이 있었던 것을 일깨워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그냥 과학기술처 간판 단 날이 중요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 쯤부터는 과학사 연구로 1930년대 과학운동을 되살려 알게 되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과학 데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필 1930년대의 ''과학 데이''란 4월19일이고, 그날은 지난 몇십년 동안 대부분 ''4.19혁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학생 데모라면 질색이었던 군사정권 시절에야 당연히 4월19일을 과학의 이름으로 더 기념하고 싶은 생각이 날 이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과학의 날''은 4월19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1967년부터 34년의 역사보다는, 1934년부터 67년의 역사로 바꾸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제 4.19를 두려워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학생들은 이미 양처럼 순해져 거리로 나오는 일조차 없다.
그래서 4.19가 ''젊음의 낭만''과 ''과학''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겹치기 잔칫날''로 길이 이 땅에 자리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
parkstar@unitel.co.kr
그 사이에 낀 20일은 ''곡우''(穀雨)이기도 하다.
19일 20일 21일이 ''4.19 혁명일''-''곡우''-''과학의 날''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흘 모두 내게는 개인적으로도 관심많은 날들이다.
하지만 20일의 곡우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생각이 없다.
24절기의 하나로 지난 4월5일의 청명(淸明)과 5월5일의 입하(立夏) 사이에 든다.
한국인이라면 24절기를 알아두고 활용하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오늘 내가 생각해 보고 싶은 기념일은 ''4.19 혁명일''과 ''과학의 날''이다.
19일은 1960년 4월19일 학생들이 이승만(李承晩.1875∼1965)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궐기했던 날이다.
그런데 달력에는 4.19를 ''4.19 혁명일''이라 표기해 놓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혁명''이었던가 나는 새삼 의문스럽다.
어느 백과사전엔 이렇게 쓰여 있다.
"독립운동가로 국민의 추앙을 받으며 이 나라 초대 대통령이 됐던 이승만은 1960년 3월15일 여당과 정부가 전국적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해 대통령에 4선됐지만, 4.19 혁명으로 사임, 하와이에 망명해 있는 동안 사망하였다"
바로 이승만을 몰아내는 그날의 데모에 나도 한몫했다.
1960년 4월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경찰을 피해가며 종로 뒷골목을 달려 광화문에 모였었다.
그날의 데모는 유혈사태로 발전했고,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같은 대학을 다니던 내 친구 하나는 그날 이후 수유리에 잠들어 있기도 하다.
강의하다가 물어 보면 요즘 대학생의 상당수는 ''이승만''이란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
4.19 기념행사라며 많은 학생들이 마라톤을 하는 수는 있지만….
참으로 시간의 약발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승만의 이름조차 모르듯이, 나도 그 사이에 그날의 흥분과 분노를 잊어가고 있는 모양이니 말이다.
한편 4월21일을 ''과학의 날''로 해마다 기념하는 것을 보기가 나는 정말 짜증스럽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34년 4월19일에 이미 식민지 조선의 지식층이 총출동해 ''과학 데이''란 것을 만들어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과학의 날''은 1934년의 ''과학 데이'' 법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1967년 과학기술처의 간판을 달고 출범한 기념으로 이듬해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날을 만들 양이면, 그 보다 33년 전의 ''과학 데이''를 부활해 4월19일을 ''과학의 날''이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정도의 역사 의식조차 없는채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이란 것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1934년의 ''과학 데이''는 그후 몇년 계속됐고, 그 행사에는 당시 조선 지도층이 대거 참여해 일종의 독립운동처럼 그 행사를 치렀다.
과학발전 없이는 조선 민족의 장래가 어둡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몸부림이 강연회 영화상영 시내행진, 그리고 ''과학의 노래'' 등에 배어 있다.
지금이라도 과학의 날을 4월21일에서 4월19일로 옮기는게 옳다.
1968년 처음 ''과학의 날''을 정할 때는 과학사 연구자가 거의 없는 시절이어서, 일제시대에 이미 ''과학 데이''란 것이 있었던 것을 일깨워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그냥 과학기술처 간판 단 날이 중요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 쯤부터는 과학사 연구로 1930년대 과학운동을 되살려 알게 되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과학 데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필 1930년대의 ''과학 데이''란 4월19일이고, 그날은 지난 몇십년 동안 대부분 ''4.19혁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학생 데모라면 질색이었던 군사정권 시절에야 당연히 4월19일을 과학의 이름으로 더 기념하고 싶은 생각이 날 이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과학의 날''은 4월19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1967년부터 34년의 역사보다는, 1934년부터 67년의 역사로 바꾸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제 4.19를 두려워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학생들은 이미 양처럼 순해져 거리로 나오는 일조차 없다.
그래서 4.19가 ''젊음의 낭만''과 ''과학''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겹치기 잔칫날''로 길이 이 땅에 자리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