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티로스(Satyros)를 처음 본 사람들은 크게 헷갈렸을 것이다.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지만 하반신은 말이나 염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半人半獸)여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아니면 자처하는대로 신으로 봐줘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솝우화를 보면 오히려 사티로스가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혼란을 겪는 얘기가 나온다.

사람과 사티로스가 친해져 어느 추운 겨울날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음식이 나오기 전, 사람이 손가락을 입 가까이 대고 입김을 불어대자 사티로스가 왜 그러는지 물었다.

사람은 "내 손이 몹시 차서 따뜻하게 하느라고 그런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죽이 나오자 사람이 이번엔 그릇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이번엔 또 왜냐는 질문을 하자 사람은 "죽이 너무 뜨거워 식히려 한다"고 대꾸했다.

이 말을 듣자 사티로스는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선언했다.

"자네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겠네. 찬 것에나 따뜻한 것에나 똑같이 입김을 불어대는 애매한 짓을 하는 자하고 어떻게 우정을 나눌 수 있겠는가?"

최근 한국경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본다면 사티로스는 더욱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금리나 환율이 높은 것이 좋은지, 낮은 것이 좋은지에 관해 사람들의 입장이 수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을 보면 몇 달 전만 해도 원화가 고평가되었다고 수출부진과 경기둔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요란했는데 최근 환율이 오르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이걸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중앙은행까지 나서고 있는 것이다.

환율문제에 관한 혼란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호주에서도 한동안 환율이 오르고 호주달러의 가치가 떨어져 왔는데, 어느 야당의원은 이것이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해외신인도 추락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정부퇴진을 요구하곤 했다.

그후 집권당이 바뀌어 이 사람이 재무장관이 되었지만 호주 돈의 가치하락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그는 말을 바꾸어 이런 현상이 수출과 경기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환율이 자꾸 오를 때 이사람 말처럼 수출이나 경기에 유리할 것이라고 믿고 방치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외환보유고를 줄여가면서라도 환율상승을 막아야 하는 것인가?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자국의 통화가 다소 저평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싫어하지 않는 것 같으며 오히려 즐기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수출과 경기가 촉진되고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플레인데 통화정책을 통해 대비해 둔다면 될 일이다.

이런 점과 과거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보유외환을 팔아가면서까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상승을 막겠다는 외환당국의 행동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고 본다.

최근의 원화약세는 주로 엔화가치 하락에 기인한 것인데 이런 여건속에서의 개입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되어 결국 보유 달러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문제가 이 정도에서 그치면 좋겠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무리한 환율안정 노력이 마침내는 경제의 엄청난 파탄을 몰고 오곤 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후반기에는 심한 인플레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환율을 고정시켜 오다가 수출감퇴 제2차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정치와 경제는 함께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 말년에는 원화환율을 방어하느라고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났고 경제는 핵폭탄에 맞은 것 이상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는 그만한 사정과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시장에 대한 불신과 자신의 능력 및 정보에 관한 과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엄청난 투기세력이 몰려오는 비상시가 아니라면 환율은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

가격변수의 움직임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과잉대응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해주어 경쟁력을 보강하게 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 가야할 시점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다면 환율은 저절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되어 갈 것이다.

/본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