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경 < 현대택배 사장 hkchoi@hyundaiexpress.com >

내 어린시절의 고향 나주는 조그맣고 소박한 시골 읍이었다.

지금은 시로 승격돼 예전 기억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키 큰 아파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고 흙먼지 풀풀 날리던 시골 황톳길도 매끈한 포장도로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고향은 고향인지라 나주에만 가면 어린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집앞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작은 시내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그 시내는 또래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의 쉼터였다.

더운 여름에는 멱을 감고 그러다가 장마라도 몰아치면 사내들은 미꾸라지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울이면 꽁꽁 언 시내는 판자를 이어 만든 썰매들로 활기를 띠었고 가을이면 앞마을 논두렁이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고 개구리를 잡아 끓여먹던 아이들로 북적댔다.

늦가을이면 수확을 끝낸 벼뿌리를 뽑아서 동네끼리 편싸움을 하곤 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삐비''라는 풀의 속을 뽑아먹고 진달래 철쭉꽃도 따먹었다.

또 길 가다가 뱀딸기 산딸기라도 발견하면 횡재라도 한 듯 얼른 따먹었던 어린시절의 하루하루는 넉넉하고 즐겁기만 했다.

우리 마을 근처에 진동이라는 곳을 지나 조금 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다보사라는 절이 있었다.

봄이 오면 다보사 입구가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고요한 산사의 대낮을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했다.

수업이 끝나면 그곳에 올라가 꽃을 구경하고 아는 할머니라도 만나면 절밥 얻어먹는 재미도 누렸다.

봄이 깊어가면서 벚꽃이 바람에 다 떨어져내려 온통 길을 뒤덮어 버리곤 했는데 집에 올 때마다 그 꽃잎들을 자루에 훑어 담아와서 집 앞마당에 다시 뿌린 기억도 난다.

먹고 살기도 어렵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군것질거리와 함께 떠올라 더욱 간절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땐 왜 그런 것들이 그렇게 맛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어린시절의 고향을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순화되고 일에 대한 열정도 더욱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