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 북쪽엔 20여개의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4,5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늘 붐볐다.

전화를 걸려는 사람들이 부스마다 길게 줄을 서 있곤 했다.

이 무렵엔 공중전화를 오래 이용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신문에 실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이다.

통행인이 많은 시간대에도 부스는 텅 비어 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려고 줄을 서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휴대폰이 널리 보급된 결과다.

우리나라 휴대폰 가입자는 2천6백80만여명.

가정마다 휴대폰을 2,3대씩 갖고 있는 셈이다.

70년대 전화 가입자를 추첨으로 뽑았고 백색 전화기는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던 것과 비교해 격세지감이다.

이처럼 정보통신은 최근 수년새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국내에 근대적 의미의 통신이 도입된지는 1백년이 넘었다.

맨먼저 들어온 것은 전신이었다.

1885년 9월28일 한성전보총국이 개설됐으며 서울~인천 구간에서 처음으로 전신업무가 시작됐다.

이 해에 서울~평양~의주를 잇는 서로전신(西路電信)이 건설됐다.

서울~부산간의 남로전신(1887년)과 서울~원산간의 북로전신(1891년)도 잇따라 개통됐다.

전화가 도입된 것은 전신보다 10년 늦은 1895년.

이듬해에는 궁내에 자석식 전화가 개통됐다.

당시 전화는 "텔리폰"을 음역해 "덕진풍" "득률풍"이라고 했고 "말 전하는 기계"라는 의미로 "전어기(傳語機)"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순종은 부왕인 고종의 능에 전화를 설치하고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통해 곡(哭)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어 1902년 서울~인천간에 전화가 개통됐고 한성전화소에서 13명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전화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암흑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통신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전쟁중인 52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62년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전기통신 보급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82년 이후에는 연평균 1백만회선 이상씩 전화가 보급돼 87년에는 1천만회선을 돌파,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렸고 이제는 세계 9위의 시설을 갖춘 통신선진국이 됐다.

90년대에는 이동전화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디지털혁명"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동전화는 단지 전화 기능만 했던 1,2세대를 지나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각국은 휴대폰으로 컬러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IMT-2000(차세대 영상이동통신)을 준비중이다.

정보통신기술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측불허의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PC통신이 각광받았다.

PC통신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컬러 사진까지 내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PC통신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특히 90년대 후반에는 ADSL과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이 가정까지 파고들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은 그동안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일들을 하나씩 실현시켜 주고 있다.

길에서든 산꼭대기에서든 휴대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디지털혁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무선인터넷 음성인식기술 가상현실기술 등이 결합되면서 수년안에 "정보통신 별천지"가 열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