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 정보통신의 날 : 화제의 인물..善行 집배원 '최희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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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의 골짜기 마을에 사는 한 소년.그는 매일 우편 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린다.
오후 서너시가 되면 어김없이 우편 배달부 아저씨는 "따르릉,따르릉" 자전거를 몰고 마을 어귀에 나타난다.
소년은 멋있는 모자를 눌러쓴 채 편지를 전달하는 우편 배달부 아저씨가 너무나 부러웠다.
소년은 일기장에 "나도 크면 우편 배달부가 돼야지"를 반복해 적었다.
그런 소년은 정확히 20년이 지난 후 꿈을 이뤘다.
"우편 배달부"란 이름이 "집배원"으로 바뀌었고 자전거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옛날 우편 배달부 아저씨처럼 모자를 쓴 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전달하고 있다.
최희상(34)씨.소년시절 꿈을 이룬 그는 요즘 우편물에 "사랑"을 싣고 서울 오류동 일대를 돌아다닌다.
바쁜 시간을 쪼개 틈나는 대로 홀로 된 노인과 고아들을 방문해 인정을 베풀고 있다.
"7년째 같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매일 마주치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그래서 자연스레 후원자로 나서게 됐습니다"
최씨가 송영수(85) 할머니를 만난 건 1년전 오류동 골목길.처음에는 인사만 하고 지나쳤지만 남편을 여의고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송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매일 같은 골목에서 최씨를 기다렸다.
최씨는 자연스레 송 할머니의 아들 노릇을 하게 됐다.
그리 많지 않은 월급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쌀과 라면을 사들고 송 할머니를 찾았다.
때로는 밤 늦게 퇴근하면서도 몸이 불편한 송 할머니를 위해 손수 밥을 지어 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최씨의 일과는 여느 집배원들과 마찬가지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7시에 구로구 금천우체국으로 출근한다.
전날밤 도착한 우편물들을 주소지별로 분류해 묶은 후 9시부터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에 나선다.
최씨가 하룻동안 배달하는 우편물은 평균 3천여통.꼬박 8시간이 걸린 오후 5시가 돼야 우편물 배달이 끝난다.
우편물은 하루라도 배달이 늦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물량이 많은 날은 점심도 거를 때가 적지 않다.
최씨는 집배원 7년동안 지난 겨울만큼 힘들었던 때는 없었다고 한다.
잦은 폭설로 골목길이 얼어붙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걸어다니며 배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연말에 우편물이 폭주할 때나 월말께 각종 고지서가 늘어날 때는 매일 밤12시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최씨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집배원으로 근무한 지난 7년간 한번도 결근을 한적이 없다.
우체국 보험 모집이나 우체통 달아주기 운동 등 우정사업본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벌이는 각종 캠페인에서는 항상 1등을 독차지했다.
이같은 성실함 덕분에 최씨는 결혼한 지 3년만에 집까지 장만했고 지금은 1남1녀를 둔 어엿한 가장이 됐다.
최씨는 요즘들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처음 집배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군대간 아들에게 보내는 엽서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 각종 사연이 적힌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흐믓함을 느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우편물이 구청이나 전화국 은행 보험사 등에서 보내는 각종 영수증이다.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보내는 책자 형태의 선전물은 무게도 만만찮아 짜증이 날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씨는 집배원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아직도 정이 담긴 우편물을 받아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역시 이 직업을 택한 게 잘했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신문을 보면 각종 캠페인도 많던데 편지쓰기 운동은 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오후 서너시가 되면 어김없이 우편 배달부 아저씨는 "따르릉,따르릉" 자전거를 몰고 마을 어귀에 나타난다.
소년은 멋있는 모자를 눌러쓴 채 편지를 전달하는 우편 배달부 아저씨가 너무나 부러웠다.
소년은 일기장에 "나도 크면 우편 배달부가 돼야지"를 반복해 적었다.
그런 소년은 정확히 20년이 지난 후 꿈을 이뤘다.
"우편 배달부"란 이름이 "집배원"으로 바뀌었고 자전거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옛날 우편 배달부 아저씨처럼 모자를 쓴 채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전달하고 있다.
최희상(34)씨.소년시절 꿈을 이룬 그는 요즘 우편물에 "사랑"을 싣고 서울 오류동 일대를 돌아다닌다.
바쁜 시간을 쪼개 틈나는 대로 홀로 된 노인과 고아들을 방문해 인정을 베풀고 있다.
"7년째 같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매일 마주치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그래서 자연스레 후원자로 나서게 됐습니다"
최씨가 송영수(85) 할머니를 만난 건 1년전 오류동 골목길.처음에는 인사만 하고 지나쳤지만 남편을 여의고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송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매일 같은 골목에서 최씨를 기다렸다.
최씨는 자연스레 송 할머니의 아들 노릇을 하게 됐다.
그리 많지 않은 월급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쌀과 라면을 사들고 송 할머니를 찾았다.
때로는 밤 늦게 퇴근하면서도 몸이 불편한 송 할머니를 위해 손수 밥을 지어 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최씨의 일과는 여느 집배원들과 마찬가지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7시에 구로구 금천우체국으로 출근한다.
전날밤 도착한 우편물들을 주소지별로 분류해 묶은 후 9시부터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에 나선다.
최씨가 하룻동안 배달하는 우편물은 평균 3천여통.꼬박 8시간이 걸린 오후 5시가 돼야 우편물 배달이 끝난다.
우편물은 하루라도 배달이 늦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물량이 많은 날은 점심도 거를 때가 적지 않다.
최씨는 집배원 7년동안 지난 겨울만큼 힘들었던 때는 없었다고 한다.
잦은 폭설로 골목길이 얼어붙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걸어다니며 배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연말에 우편물이 폭주할 때나 월말께 각종 고지서가 늘어날 때는 매일 밤12시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최씨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집배원으로 근무한 지난 7년간 한번도 결근을 한적이 없다.
우체국 보험 모집이나 우체통 달아주기 운동 등 우정사업본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벌이는 각종 캠페인에서는 항상 1등을 독차지했다.
이같은 성실함 덕분에 최씨는 결혼한 지 3년만에 집까지 장만했고 지금은 1남1녀를 둔 어엿한 가장이 됐다.
최씨는 요즘들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처음 집배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군대간 아들에게 보내는 엽서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 각종 사연이 적힌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흐믓함을 느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우편물이 구청이나 전화국 은행 보험사 등에서 보내는 각종 영수증이다.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보내는 책자 형태의 선전물은 무게도 만만찮아 짜증이 날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씨는 집배원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아직도 정이 담긴 우편물을 받아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역시 이 직업을 택한 게 잘했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신문을 보면 각종 캠페인도 많던데 편지쓰기 운동은 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