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된 아내향한 애끓는 思婦曲..김춘수 15번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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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김춘수(79)씨가 생애 16번째 시집 ''거울속의 천사''(민음사)를 냈다.
대표작 ''꽃'' 으로 반세기가 넘게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노시인은 새 시집에서 2년전 사별한 아내를 그리는 절절한 심경을 담아냈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어디로 갔나,/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어디로 갔나,/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되돌아 온다/내 목소리만 내귀에 들린다/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강우(降雨)중에서)
시인은 "내 생애에 이렇게 단시일에 많은 시를 쓴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89편 중 절반 정도에 ''아내의 입김''이 서려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천사가 된 아내''는 그에게 삶의 소중한 것들을 남겨뒀다고 밝혔다.
인연은 우연이 아니며 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
시 ''대치동의 여름''은 55년을 해로한 부부가 죽음으로 갈라섰을 때 하루가 얼마나 긴지를 새삼 일깨운다.
''아직은/오지 말라는 소리,/언젠가 네가 새삼/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 /우리가 이승에서/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그것,/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부용꽃으로 볼그스름 피어날 때까지/하루 해가 너무 길다''
아내의 빈자리는 시인에게 ''어딘가 먼 데로 하염없이/눈을 주는''(귀가길 중에서) 막막한 그리움과 ''부용꽃피는/어느 둑길에서 마주치는'' 슬픔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아내는 갔지만 그는 아내를 보내지 않았다.
아내는 거울속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요한 눈길로 그를 응시하며 시작(詩作)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거울속에도 바람이 분다/강풍이다/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방축이 무너진다/거울속 깊이/바람은 드세게 몰아 붙인다/거울은 왜 뿌리가 뽑히지 않는가/거울은 왜 말짱한가/거울은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비춘다 하면서도/거울은 이쪽을 빤히 보고 있다/셰스토프가 말한/그것이 천사의 눈일까''(거울 전문)
시인은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실으며 등단,''구름과 장미'' ''꽃의 소묘'' 등을 펴냈다.
그는 경북대와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로 시작되는 ''꽃''은 애송되는 명편 중 하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대표작 ''꽃'' 으로 반세기가 넘게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노시인은 새 시집에서 2년전 사별한 아내를 그리는 절절한 심경을 담아냈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어디로 갔나,/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어디로 갔나,/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되돌아 온다/내 목소리만 내귀에 들린다/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강우(降雨)중에서)
시인은 "내 생애에 이렇게 단시일에 많은 시를 쓴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89편 중 절반 정도에 ''아내의 입김''이 서려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천사가 된 아내''는 그에게 삶의 소중한 것들을 남겨뒀다고 밝혔다.
인연은 우연이 아니며 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
시 ''대치동의 여름''은 55년을 해로한 부부가 죽음으로 갈라섰을 때 하루가 얼마나 긴지를 새삼 일깨운다.
''아직은/오지 말라는 소리,/언젠가 네가 새삼/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 /우리가 이승에서/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그것,/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부용꽃으로 볼그스름 피어날 때까지/하루 해가 너무 길다''
아내의 빈자리는 시인에게 ''어딘가 먼 데로 하염없이/눈을 주는''(귀가길 중에서) 막막한 그리움과 ''부용꽃피는/어느 둑길에서 마주치는'' 슬픔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아내는 갔지만 그는 아내를 보내지 않았다.
아내는 거울속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요한 눈길로 그를 응시하며 시작(詩作)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거울속에도 바람이 분다/강풍이다/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방축이 무너진다/거울속 깊이/바람은 드세게 몰아 붙인다/거울은 왜 뿌리가 뽑히지 않는가/거울은 왜 말짱한가/거울은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비춘다 하면서도/거울은 이쪽을 빤히 보고 있다/셰스토프가 말한/그것이 천사의 눈일까''(거울 전문)
시인은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실으며 등단,''구름과 장미'' ''꽃의 소묘'' 등을 펴냈다.
그는 경북대와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로 시작되는 ''꽃''은 애송되는 명편 중 하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