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정책이 이렇게 자주 바뀌니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계열의 카드사에서 기획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K상무.

그는 기획 일만 10년 넘게 해온 카드업계의 베테랑 ''기획통''.

요즘 들어 K상무의 오전 일과는 신문읽기에서 시작해 신문읽기로 끝난다.

"매일 변하는 신용불량자 관련정책을 파악하기 위해선 시간이 부족한 편"이라는게 그의 푸념이다.

그가 지적한 정부정책의 ''변화무쌍함''은 다음과 같다.

올 1월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금융회사는 신용정보관리규약을 새롭게 만들었다.

규약의 핵심은 ''신용불량자 등록기준 강화''.

이에 의하면 올 4월부터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3개월내 갚지 못하면 무조건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도록 돼있다(종전 6개월).

그 당시 금융당국은 이같은 방안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다.

"신용불량 대상은 확대하되 규제는 자율적으로 하는 선진시스템"이라는게 당국의 평가였다.

기획업무를 총괄하는 K상무로선 연체방지를 위한 전략수립에 힘을 쏟았다.

조금이라도 신용에 이상조짐을 보이는 회원에겐 현금서비스 한도를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정부의 찬성 입장은 ''드라마틱''하게 반전됐다.

신용불량자 급증에다 고리사채가 성행하는게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선의의 불량자는 구제해야 한다고 앞장서 외쳐댔다.

곧바로 1백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기록보유자 포함)를 구제한다는 조치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카드업계에 신용불량기록이 있거나 소액연체자에 대해선 일반회원과 동등대우를 해줄 것을 ''지시''했다.

오는 6월부터 이를 어긴 회사엔 제재를 가하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K상무는 난감했다.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때문에 새로 짠 부실채권 방지전략을 전면 수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실채권 방지와 신용불량자 대출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지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우리 은행산업의 현 위상이 외압에 의한 부실기업 대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당국은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최철규 금융부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