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니 트렌드니 믿을 게 못돼"

옷장사들을 울상짓게 한 ''블랙&화이트''제품.

검정색과 흰색은 당초 패션전문가 모두가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컬러 트렌드였다.

헬무트랭 조르지오아르마니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1년전부터 검정색이 뜰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그 엘르 WWD 등 패션잡지들도 현란한 화보를 통해 ''이 색깔의 옷을 입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션연구소도 ''환경적''''사회적'' 근거를 대며 의류업체들이 검정색과 흰색 옷을 많이 만들 것을 부추겼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블랙&화이트는 히트 상품 대열에 끼지 못했다.

어느 특정 스타일이 유행으로 인정되는 때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경우다.

전문가들은 열심히 밀었지만 소비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블랙&화이트가 유행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한때 하이패션 디자이너와 기성복메이커 그리고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패션전문 매체가 ''작당''해 일반 대중이 입어야 할 옷을 결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패션트렌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소비를 부채질했다.

지난 1백여년간 패션업체들은 치마 길이와 넥타이 폭을 반복적으로 조절해왔고 대중들은 그 유행을 쫓아 옷장을 새롭게 바꾸어 갔다.

그러나 최근 패션업계를 움직여왔던 세력은 주도권을 빼앗겼다.

90년대 중반 디자이너들은 짧은 스커트를 유행시켜려다 실패했다.

이후 경건한 수도사룩을 선보였다가 또 다시 쓴맛을 봤다.

밀리터리룩도 실패한 트렌드 중 하나다.

이것은 패션업계를 움직이는 주도권이 업체에서 소비자로 완전히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어떤 옷을 입을까? 얼마를 주고 살까?''를 주체적으로 결정한다.

아무리 유행 디자인이라고 강조해도 실용적이면서 적당한 가격이 아니면 외면한다.

이제 패션업체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파리나 밀라노에서 발신되는 첨단 트렌드가 아니다.

21세기 고객의 요구를 예측할 수 있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