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연등 물결이다.
거리마다,사찰마다 연꽃세상을 이뤘다.
서울 수유리의 화계사도 ''부처님 오신 날(5월1일)''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적목련 한그루가 새 잎을 막 내미는 조실당에서 숭산(崇山·74)스님을 만났다.
건강이 썩 좋지는 않다면서도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는 모습이 연꽃처럼 맑다.
"얼굴은 인간의 모습인 데 행동이나 의식은 동물같은 사람이 많아졌어요.
자기만 생각하고 남에 대한 배려는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본성을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숭산 스님은 인간성 상실의 근원을 인구의 급팽창과 과도한 육식에서 찾으면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인구가 세배 이상으로 급증하면서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옷을 해 입기 위해 수많은 동물을 죽여왔다.
그렇게 희생된 많은 동물들이 사람으로 환생해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되고 있다는 것.
고기를 많이 먹다 보니 정신이 흐려지고 남 생각을 할 줄 모른다는 얘기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성을 찾자''고 하셨지요.
서양종교에서는 신에 의지해야 하므로 인간 자체가 뭔지 알기 어렵습니다.
반면 불교는 나 자신을 깨달음으로서 대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는 종교입니다.
근래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사실 숭산 스님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선승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 캐나다 폴란드 등 세계 32개국에 한국의 선불교를 전했다.
이들 나라에서 운영중인 선방이 1백30여곳,아프리카에서도 5∼6곳의 선방이 있다.
또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5만여명에 이르고 그중 법사 자격을 받은 사람만 8백명을 웃돈다.
"지난 70년대에 처음 미국에 가서 일본의 선이 많이 퍼져 있는 걸 보고 일본보다 훨씬 앞선 한국의 선불교를 포교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미국에 남아 세탁소 일을 하면서 포교를 시작했어요"
선불교는 직접 마음을 탐구해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다.
때문에 단지 수행이 있을 뿐 언어를 통한 가르침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수박의 모양과 맛이 어떻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베어물어 보는 것이 ''선''이라고 숭산 스님은 비유했다.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했지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는 게 선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것도 필요없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나만 남고 내가 부처가 되지요"
마음을 탐구하는 방법에 대해 숭산 스님은 "밥을 먹든,공부를 하든 자신이 하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하라"고 했다.
생각이 갈라지면 진리를 못보지만 생각이 하나로 모이면 보고 듣는 것이 진리 아닌 것이 없다는 것.
"앞으로 참나와 우주의 근본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특히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더욱 심해질텐 데 그러면 인간이 해를 입게 돼요.
이 둘을 융화시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인간의 본성품을 발견해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숭산 스님은 다 익어 땅에 떨어진 과일이 금방 썩어버리듯 과학기술 문명이 절정에 달하면 인간세상도 갑자기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썩은 과일의 씨앗에서 새 싹이 움트듯 인간 본래의 ''씨''인 본성품을 발견하고 보살행을 실천하면 말세의 고통과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현실정치에 문제가 많지만 국민들이 어떤 각오로 대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국민 모두가 마음을 가다듬고 각자 하는 일에 열성을 가져야 해요.
회사원이든 언론인이든 종교인이든 모두 열성을 갖고 일할 때 국가가 잘되는 것입니다"
최근 경북 영주의 현정사 주지로 취임한 미국인 현각 스님 이야기를 꺼내자 숭산 스님은 "머리가 참으로 비상하고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아직은 남에게 선을 가르칠 경지에 이르지 못해 지도법사가 못됐다"면서 "올 가을 해제 때에는 될 것"이라고 했다.
숭산 스님은 지난 47년 마곡사로 출가해 행원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고봉 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 받았다. 불교신문 사장,비상종회 의장 등을 지냈으며 98년 화계사 조실로 추대됐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