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3일 기업 구조조정 정책의 골간으로 삼아온 ''부채비율 2백%'' 원칙의 일각을 허물었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기 부진과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는 관련 업계의 현실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날 민주당은 무역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정부는 청와대에서 가진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각각 수출 및 설비투자 촉진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은 또 기업별 DA(수출환어음) 한도를 늘리고 30대 계열기업의 해외 현지법인 보증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무역업계의 건의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임시세액공제제도를 올해 말까지 6개월 연장하고 멀쩡한 기업까지 동반 부실로 몰아넣는 법정관리.화의 기업들의 덤핑 등 시장교란행위에 철퇴를 가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수출촉진과 설비투자 확대가 이번 조치의 목표다.

◇ 부채비율 탄력운영 =기업들의 발목을 죄어온 ''부채비율 2백%'' 조항을 거둬들이기로 한 것은 그동안의 정책기조로 볼 때 파격이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지 않고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며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출 것을 최우선 과제로 요구해 왔다.

부채비율 2백%를 맞추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여신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가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랐다.

특히 업종별 영업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2백%'' 조항은 종합상사 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왔다.

매출이 이루어지기 전에 대규모 선투자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 이들 업종의 특성이다.

자금흐름상 불가피한 차입조차 인정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수출과 건설 등에 심각한 경기한파가 닥쳤다는 것이다.

건설 해운 분야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탄력적인 정책운영에 대한 필요성도 강력히 대두돼 왔다.

최근 수출이 두달 연속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무역전선에 짙은 먹구름이 깔리면서 수출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종합상사들에 대한 ''족쇄 풀기''를 더는 미루기 힘든 상황도 됐다.

''이자보상배율이 1 이상인 기업''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동안 철벽처럼 기업들 앞에 버텨온 자금 족쇄를 처음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적지 않다.

◇ 그밖의 지원책은 =정부 여당은 DA 한도 확대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앞으로 기업의 수익성 등도 고려될 수 있도록 정책 기조를 다소 전환키로 했다"며 DA 한도 확대가 조만간 이뤄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금감원은 이미 은행들에 통보된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지법인의 현지금융에 대해서는 당국이 별도의 규제장치를 두지 않는다는 점도 재확인됐다.

다만 현지금융에 대한 본사보증 문제는 재경부와 민주당의 견해가 맞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 어떤 효과 낼까 =부채비율 2백% 탄력 적용은 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지난 3년간 숨가쁘게 추진돼 온 구조조정의 큰 틀을 보다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종합상사 등 해당 기업들의 자금 사정에 한결 숨통이 트이면서 영업 전선에도 활력이 뒤따를 전망이다.

또 정부가 불량 덤핑기업 완전퇴출 등 강도 높은 상시구조조정체제에 돌입키로 한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시각이 많다.

정상적으로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이자보상배율 1 이상)들에 대해 부채비율의 족쇄를 풀어주는 한편으로 상습 덤핑기업들을 제거함으로써 시장 환경도 근본적으로 개선키로 한 조치가 어떤 효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