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식 < 숭실대 교수 경영학 >

연기금의 주식투자허용 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증권시장을 단기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조는 정부가 주요 연기금의 증시개입을 희망하더라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러한 점은 최근 연기금의 주식투자허용 조치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이 보여준 반응과 시장상황을 보아가면서 신중하게 투자하겠다는 기금운용위원회 담당자들의 태도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연기금의 주식투자허용 조치는 필요하다.

증시의 단기부양이라는 측면보다 자본시장의 체질개선과 연기금의 재정건전성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다 복합적으로 접근되고 이해돼야 한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안정적인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증대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증권시장은 미래 한국기업의 추정 재무제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증권시장의 무기력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개별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 등 기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경제 및 엔화 등 외부요인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우리의 투자자들이 매우 단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하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식거래 회전율,지나치게 높은 개인투자자 비중 등은 우리나라에서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로 말미암아 주가수준이 자산가치에 근거한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전체 상장기업의 73%에 이르며,작년 당기순이익으로 당해 회사 상장주식을 전부 살 수 있는 회사만도 6개사나 된다.

지난 3월말 31%에 이르는 외국인 투자는 계속돼야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은 외국인 투자매매동향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장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기관투자가로서의 연기금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및 확대 조치는 향후 장기추이에 따른 연기금재정의 건전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현재의 적립규모와 추세를 감안한다면 국민연금의 경우 현재의 약 72조원에서 향후 20년내 4백조∼6백80조원 규모로 증대될 것으로 추산된다.

주목할 점은 적립형태의 연금구조는 저부담 고급여의 성격을 안고 있으며,인구구조가 노령화돼 간다는 사실이다.

연금의 수입대비 지급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 예상된다.

문제는 현재의 자산운용구조하에서는 연금재정의 건전성 자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과 비슷한 적립식 구조를 갖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CalPERS의 주식투자 비중이 전체 1천6백90억달러의 64%에 이르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다만 연금기금이 장기성 책임준비금 성격을 지닌 공적연금이라는 점을 감안,주식투자로 인해 높아진 위험을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위험관리시스템과 자산운용원칙을 재정립하고 또 전문인력체제를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논의중인 기업연금제도를 조속히 도입,장기적으로 기업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늘려 나가야 한다.

이번 연기금의 주식투자허용과 관련해 관련세제를 정비하고 파생상품과 국제분산투자를 허용하는 등 일련의 제도개선은 이런 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연기금의 자산운용과 관련, 가장 중요한 점은 연기금 운용주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신장시켜 주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기금운용성과의 원칙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 부실화에 대비, 국회의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현행 1년 단위 국정감사방식이 유지되는 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금운용은 기대하기 어렵다.

끝으로 정부는 전체 운용법령을 보완함으로써 효율적 운용을 위한 총론과 틀을 제시하는 선에서 역할의 한계를 그어야 하며,어떠한 경우에도 기금 운용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연기금의 국민경제적 의의가 살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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