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하기로 이름난 강원도 인제에서도 자동차로 20분가량 동쪽 산악지대로 더 들어간 인제초등학교 가리산 분교.

이곳에선 안테나를 아무리 높이 세워도 TV를 볼 수 없다.

해발 1천5백m가 넘는 가리산의 험난한 봉우리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TV를 보려면 값비싼 위성안테나를 달아야 한다.

비교적 낮은 지대에 위치한 분교의 고도도 4백m가 넘는다.

이 외진 산골 학교에 변화가 인 것은 지난해 9월 초고속 인터넷망이 학교에 설치되면서부터.

정부의 학교정보화 사업 덕분에 전교생이 20명에 불과한 이 학교에 컴퓨터가 16대나 들어왔다.

교실마다 컴퓨터가 설치됐고 별도의 컴퓨터 방도 마련됐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6학년생인 박운선 어린이의 꿈은 산골 소년답지 않게 "프로 게이머"다.

보통 등교시간인 8시30분보다 한 시간정도 앞서 학교에 나와 방과후 오후 늦게까지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게임에 몰두한다.

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포트리스 게임에서 대포의 각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하기 바쁘다.

5학년생인 최혜란 양은 소박하고 예쁜 얼굴 만큼 인터넷으로 동심을 키워가고 있다.

도시친구들과 e메일을 주고받고 채팅, 웹서핑을 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얼마 전에는 "이슬비"란 동시를 인터넷에서 찾아 책상앞에 써붙였다.

"이슬비 색시비/부끄럼쟁이/소리없이 몰래/내려오지요/이슬비 색시비/곱고 곱지요/빨강 꽃에 빨강비/파랑 잎에 파랑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인터넷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찾아 저장해 놓았다.

3학년 학생인 송준섭군도 요즘 클릭B나 유승준의 노래를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들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이 학교 정종암(57) 교장 선생님은 "지역 주민 대부분이 농민이나 군인가족이고 마땅히 여가를 보낼 시설이 없다"며 "인터넷이 들어온 이후 학교가 놀이터이자 문화센터가 됐다"고 말했다.

휴일에도 당직 선생님이 근무를 하면서 문을 열어 놓기 때문에 학교는 아이들로 북적댄다.

인터넷은 훌륭한 시청각 자료이기도 하다.

학교에 인물사전이 없어도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정약용 김정호 등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와 각종 자료를 찾아낸다.

임진왜란 살수대첩도 사이버 공간에서 생생하게 체험한다.

과학시간에 명주잠자리로 변하게 되는 "개미귀신"이란 유충도 인터넷을 이용해 찾아낸 적도 있다.

교육전문 사이트인 에듀넷으로 수학 문제를 게임하듯 즐기면서 공부하기도 한다.

영어공부에도 인터넷은 최고의 교재다.

재미있는 게임이나 노래와 함께 영어를 배운다.

6학년생 홍종웅 어린이는 "뇌세포가 영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자못 진지한 태도다.

최미심(34) 선생님은 "지난 3월 부임한후 TV조차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며 "인터넷 덕분에 아이들이 바르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아이들 스스로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과제물도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산골 인터넷 선생님의 포부다.

인제=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