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포함,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이후 새로 선임된 10여곳의 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 사장과 이사장 가운데 민간인 출신은 한명도 없다.

전원이 정치인이나 주무 부처의 전직 간부, 군(軍) 또는 경찰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정부가 지난 3월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며 공기업 사장 6명과 감사 1명 등 7명을 전격 해임, 개혁성과 전문성을 가진 새 인물로 교체키로 한 방침과는 정반대의 결과여서 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 낙하산 인사 관행 여전 =산업자원부는 지난 2일 실시된 한국석유공사 사장에 이수용 전 해군 참모총장을 뽑았다.

바로 다음날엔 정장섭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이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보다 1주일전쯤 실시된 대한석탄공사 인사에서는 광산노조 부위원장 출신이자 민주당 당무위원인 유승규 전 국회의원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가스기술공업은 ''가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민병군 전 광주.전남지방 중소기업청장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건설교통부 산하기관장 선출에는 권력기관 출신 사람들이 입성했다.

지난달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에는 윤웅섭 전 서울경찰청장이,한국감정원장엔 경찰대학장.지방청장 등을 지낸 이수일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선임됐다.

건교부 관계자는 "내부 인사를 밀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말해 정치권의 막후 입김 가능성을 내비쳤다.

주택공사 사장 선임과정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불과 1주일의 응모기간을 두고 신문공고가 나왔고 6명이 응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응모자중 서광선 전 부사장과 권해옥 자민련 부총재 등 3명이 마지막 선임단계까지 각축전을 벌였다.

6명의 응모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3명으로 압축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9일 공개된 새 사장에는 권해옥씨가 선임됐다.

수자원공사 사장 공모엔 고석구 현 부사장이,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공단 이사장에는 김재영 노동부 고용정책실장과 문형남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등 내부 공무원이 내려갔다.

물론 해당부처 공무원이나 정치권 인사라도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면 공기업 사장을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왕 정부가 개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낙하산 시비''가 일지 않는 인사를 중용했어야 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관련 제도 제기능 못해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마련해 놓은 ''사장추천위원회''나 ''인력 풀(Pool)제'' 역시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제도가 오히려 낙하산 인사에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주택공사의 사장추천위원회는 7명의 공사 비상임이사와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6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사장추천위원회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비상임이사는 사실상 사장이나 부사장이 임명해 거수기나 다를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도 있다.

전문성있는 인사들로 인력 풀을 구성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겉돌고 있다.

산하기관이 1백여개로 가장 많은 산업자원부는 한국석유공사 등 14개 기관의 인력 풀 구성을 마쳤으나 인력 풀 내에 공무원 출신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 관계자는 "인력 풀에는 전직 장관을 비롯 1급 출신 공무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산하기관이 60여개인 건교부도 수자원공사 등 12개 기관에 대해 인력 풀을 구성했지만 현직 관료들이 인력 풀에 상당수 포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 해법은 정치권에서 =사장추천위원회와 인력 풀 제도를 해당 기관들이 제대로 활용할 의지가 없어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말이다.

황성돈 외국어대 교수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 놓았더라도 대통령이나 정치권 스스로 이를 어긴다면 낙하산 인사 관행은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민간 전문가를 적극 찾아나서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