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간에 기업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재벌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모색하자는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신광식 기업정책팀장이 작성한 보고서는 정부의 대기업 독점 규제 정책이 경쟁촉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미흡했다고 지적하고 대기업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보고서 요지.

기존 재벌정책은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출자총액 제한제도,채무보증 해소·금지 등 재벌기업에 대한 직접적 규제를 통해 소유·지배권의 집중을 완화시키려고 해왔다.

반면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점이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등 경쟁상의 문제는 무시되거나 부수적으로 처리돼 왔다.

재벌이 사업다변화,선단식 경영 등을 통해 경쟁제한적 행위를 행사할 수 있는 원인은 재벌이 독점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현재 재벌규제는 자산총액 기준에 따라 기업집단의 순위를 매겨 대상을 정하고 있다.

일정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정해 일률적·직접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것은 재벌구조와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정책 시행시 안정성의 문제도 발생한다.

예컨대 자산기준 31위인 A라는 기업집단의 자산규모가 변하지 않더라도 30대 기업집단에 속한 재벌중 한군데라도 기업집단지정에서 탈락하면 A는 자동적으로 30대 기업집단에 지정돼 출자총액제한,채무보증 해소 등 각종 규제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지정에서 제외되면 곧바로 규제준수의 의무도 사라진다.

외환위기처럼 특수한 상황이 발생할 때는 규제의 지속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총량적·획일적 규제도 재벌 계열사의 지분율을 떨어뜨리거나 총수의 지배권을 약화시키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증명됐다.

출자총액규제가 시행됐던 지난 87년∼97년간 30대 재벌의 계열사수는 5백9개에서 8백19개로 늘었고 총수의 지배권과 그룹 집중식 경영도 지속돼왔다.

재벌기업이 순자산액을 늘리면 사실상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산업합리화 국제경쟁력 강화 업종전문화 등 여타 정책목적을 수용하기 위해 각종 예외가 인정돼 제도를 재도입한다고 해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향후 재벌정책은 ''직접적 규제''가 아닌 ''경쟁''정책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경쟁정책 당국은 독점력을 남용해 국내외 경쟁을 저해하는 기업에 대해 해당 기업을 분할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고 재벌기업구조 자체를 개선할 수 있도록 계열분리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