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아타이어공업과 넥센타이어란 "쌍두마차"를 이끌고 있는 강병중 회장(62).

강 회장에게는 남들이 개발 못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돈이 되는 사업을 정확히 판별하는 사업가,경제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한 "준비된 기업인"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부산상의 의장으로 7년이상 재직하는등 지역경제의 "거인"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다.

경남 진양군 태생의 강 회장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67년.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판단,운수업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덤프차와 화물차를 들여와 팔았다.

한 대를 판매한 뒤 두 대를 들여오는 전략을 구사했다.

판매가 늘면서 사업에 자신감이 생기자 직접 운수회사를 차렸고 때마침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면서 주문이 쏟아졌다.

이어 강 회장은 도로개발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국내에선 처음으로 용달회사를 설립했다.

당시만해도 말수레가 흙과 돌을 실어나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즉시 3륜 용달차 8백대를 구입해 영업에 들어갔으며 결과는 대성공.

강 회장의 계산은 또 적중했다.

용달차 영업 중 강 회장은 잦은 타이어 펑크에 염증이 났다.

튼튼한 타이어를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때마침 흥아타이어 재생공장이 망해 이를 인수한 뒤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해도 타이어회사에서 타이어와 튜브를 한꺼번에 생산했다.

강 회장은 타이어안에 들어가는 튜브만 만들기로 결정했다.

많은 돈을 들이지않아도 생산할 수 있는 데다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 판단도 옳았다.

생산한 지 3년만에 굴지의 타이어회사들은 튜브공장 문을 닫고 흥아의 튜브를 샀다.

수출의 길도 뚫렸다.

이 덕분에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튜브 생산회사로 우뚝서게 됐다.

내친 김에 강 회장은 튜브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용 타이어를 개발했다.

가격이 싸고 질도 좋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현재 1백20여개국에 수출할 정도다.

강 회장의 경영철학은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

이런 생각으로 생산한 제품이 바로 지게차 타이어다.

국내기업 중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이 제품은 미8군에 20년 이상 납품되고 있다.

골프공 제작사업도 그가 생각해낸 쾌거.

튜브와 타이어의 탄력성을 연구해온 그는 골프공에 있어서도 탄력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에 착안,골프공 제조회사인 파맥스를 설립했다.

지난 97년에는 빅야드(Big Yard)라는 제품을 내놓았고 멀리 날아간다는 장점이 전해지면서 일본과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강 회장은 외환위기를 사업확장의 적기로 판단,승부를 걸었다.

우선 제일투자신탁과 경남생명을 매각,현금을 확보했다.

대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터라 현금만 갖고 있으면 좋은 기업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기회는 찾아왔다.

우성타이어가 부도로 입찰에 들어간 것이다.

경영만 잘하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최고가격을 써 낙찰을 받았다.

회사 이름을 넥센타이어로 바꾸고 생산성 향상에 나섰다.

노조 집행부도 강 회장과 경영진의 경영혁신 노력에 공감,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내수시장의 점유비가 40% 이상으로 높아졌고 원료비도 첫해 50억원 이상을 절감,인수 1년 만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7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국내 최단기 종결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강 회장은 튜브사업의 쇠락에 대비하고 있다.

스테인리스와이어를 생산하는 한국강선과 합병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사업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돈 많이 벌어 직원들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주고 주주에게 높은 배당을 해야 합니다.

사회환원도 하고 재투자를 통해 영원히 성장하는 세계적인 향토기업으로 육성시켜 나가겠습니다"

평생 타이어업을 지켜온 강 회장은 이것이 앞으로 남은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051)645-0301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