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이 < 문학평론가 whitesnow1@daum.net >

5년을 넘게 기른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화분에서 자라는 분재에 가까운 나무다.

며칠전 물을 주다가 그만 가지 하나를 부러뜨렸다.

유달리 실해서 많은 잎들을 피운 가지였다.

부러진 상처로 배어 나오는 연둣빛 수액이 마치 고통을 호소하는 선연한 피처럼 보였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궁여지책으로 부러진 부분을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가지가 시들때까지 며칠만이라도 원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부질없는 일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투명 테이프를 붕대 삼아 가지가 다시 붙은 것이다.

부러진 부분은 수액과 새로 자란 속살로 탱탱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원 상태보다 더 굵고 싱그러워진 그 부분은 더 이상 찢겨진 상처가 아니었다.

생명이 가장 진한 생명의 정수를 뿜어내는아름다운 출구였다.

이것은 자연의 놀라운 재생 능력에 대한 소박한 목격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안,한 줌의 흙이 담긴 화분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경이롭다.

재생과 치유는 그것이 생명체이기에 가능하다.

자연의 생명체는 한 개체를 넘어 산과 강,바다,지구와 우주 전체를 말한다.

산불로 폐허가 되었던 태백의 몸이 되살아나는 장관을 목격한 바 있다.

그것은 죽음에서 귀환하는 거대한 생명이었으며,그 속에는 신성한 산의 정령(精靈)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부서지고 끊어진 자연의 뼈와 핏줄을 잇는 작업은 생명 운동의 초석이 된다.

수많은 도로에 의해 나누어진 산과 들은 생명체의 이동이 단절된 ''섬 효과''로 황폐해지는데 ''생명의 다리(eco-bridge)''는 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몇년전부터 미국에서는 댐을 없애고 있다고 한다.

강물이 다시 흘러 고기들이 자유롭게 오가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사람이다.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는 댐을 만드는 일에 열성이니 답답하다.

''새만금 갯벌''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그 천혜의 가교를 없애고 나면,다시 이을 방법은 거의 없다.

콘크리트와 인공의 진흙더미 외에는.경제적인 이익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연의 가치와 그 자연이 오래 오래 누리게 해줄 (경제적인)혜택을 생각지 않는 안타까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